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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터넷 밈(meme) ‘중꺾마’의 유래와 갓CFS [털게요] 2023-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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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을 유치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롤드컵 유치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서울시는 롤드컵 결승전 개최를 발판삼아 ‘세계 게임 도시, 서울’로 도약을 본격화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상전벽해다. 게임 때문에 사람이 다쳤다느니 게임과 현실을 구분 못해 형사사건이 발생했다느니 등 부정적인 뉴스들이 세상과 담을 쌓고 게임만 하는 사람만 화면에 비춰주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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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열린 2018 롤드컵 결승전에는 구름관중이 모여 가상 걸그룹 'K/DA'의 오프닝 무대와 e스포츠를 즐겼다. 

K/DA의 노래 'POP/STARS'는 미국 아이튠즈 KPOP 부분 1위, 국내 벅스 차트 6위에 오르는 등 게임 외 부문에서도 화제가 됐다. 자료: 라이엇게임즈 


게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영향이 가장 크다. 게임 향유층이 많아져 게임 산업/콘텐츠에 사회 병폐 책임을 전가하려는 구태의연한 모습이 사라진 덕분이다. 이제 굳이 ‘게임이 문화다’라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캐치프레이즈를 읊으면서, 게임하는 명문대생과 ‘사’자 직업을 찾아다니면서 “게임은 좋아요”라는 말을 듣고 기성세대를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까지 왔다. 게임은 그냥 그 자체로 콘텐츠 산업의 기수이며 또래, 사교, 여가에 일상적으로 스며들었다.


게임이 일부층만 향유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에서 체감할 수 있다. 작년 우리나라 각계각층에서 사용됐던 ‘중꺾마’는 사실 e스포츠에서 등장한 말이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오피니언 리더들은 물론이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쓰면서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됐고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이 e스포츠씬에서 등장해 퍼져 나간 말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주위에 많다면 그건 당신이 겜돌이라서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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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꺾마 전설의 시작... 자료: 쿠키뉴스 


중꺾마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데프트 김혁규 선수로부터 유래됐다. 김혁규는 2022년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1라운드 패배 후 "오늘 지긴 했지만... 저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제목이 ‘데프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나가면서 탄생했다. 이후 최약체로 평가받던 김혁규의 소속팀 DRX가 거듭 역전 드라마를 쓰며 기적적인 우승을 차지하자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롤드컵 우승 후 인터뷰에서 데프트 본인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실제 김혁규가 한 발언으로 남았다.


김혁규는 10년 동안 최정상급 선수로 활약했지만 롤드컵과는 연이 없었다. 피지컬이 중요한 e스포츠에서 황혼기를 넘어선 만 26살에 일궈낸 첫 우승이라는 점과 함께 최약체로 평가받은 최하위 시드팀이 쟁쟁한 상대를 꺾고 트로피를 들어올린 모습은 e스포츠 팬들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실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에 걸맞은 소년만화 같은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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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트 김혁규의 발언은 메인뉴스까지 전파를 탔다 자료: SBS 


포기하지 않으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도전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몇 년간 ‘88만원 세대’, ‘N포세대’, ‘설거지론’ 등 염세적인 단어에 지속 노출됐던 세대에게 희망을 전했다. 실제로 이후 ‘오히려 좋아’, ‘알빠임’으로 대표되는 희망적인 뜻을 담은 어구들이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e스포츠와 기존 스포츠를 함께 즐기는 이들을 통해 다른 스포츠로 ‘수출’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통해 전국민에게 퍼졌다.  대한민국의 16강이 확정된 뒤 FC서울의 나상호 선수가 FC서울팬이 만들어준 태극기를 들고 선 모습이 중계되면서다. 드라마틱하게 16강을 확정지은 그 상황에서, 월드컵 전 많은 비난 속에서 꺾이지 않고 월드컵에서 존재 이유를 증명한 나상호가, 김혁규의 ‘그 멘트’가 적힌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이 태극기는 황희찬 선수가 관중석에 태극기를 요청해 피치로 던져진 몇 개의 태극기 중 하나였다. 그 태극기가 돌고 돌면서 나상호에게 전달된 태극기라는 이야기도 제법 드라마틱하다. 이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털게는 중꺾마를 들고 선 나상호를 향해 FC서울 응원가를 부르며 목놓아 울었다. “끝까지 포기 말고 힘을 다해 싸워라~ 너희는 우리의 자존심~ 아레오~ 아레아레오~ 으헣헣헣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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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은 나상호는 현재 K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자료:  축구 커뮤니티 


e스포츠 선수 한 명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데는 감동코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e스포츠를 향유하는 층의 감성과 사고가 사회를 관통하는 코드와 다르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스포츠가 특수한 괴짜가 즐기는 독특한 취미가 아닌 대중적인 문화가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스포츠가 등장한 이후로 이를 즐기는 층의 아이디어와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은 e스포츠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다시 사회 전반으로 뻗어나가며 순환 성장한다. e스포츠에서 생겨난 용어와 응원 문화가 다른 스포츠와 각종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e스포츠 씬에서 나온 말은 중꺾마말고도 많다. 아주 예전부터 밈으로 활용됐던 홍진호 선수의 ‘2’는 2022년 2월 22일 ‘황시’로 불리며 아예 세대를 관통하는 코드가 되었고 한 때 인터넷을 휩쓸었던 ‘~~삼’체를 만든 것도 e스포츠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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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름에도 2가 2개씩 들어간 홍진호 선수… 그저, 갓… 자료: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e스포츠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선수에게 붙는 별칭인 ‘갓(God)’은 국내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도 쓰이다 이제는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됐다. ‘갓(God)’이 최고를 뜻하는 접두사처럼 사용된다.


예를들면 ‘갓 크로스파이어 스타즈(CFS, Crossfire Stars)’, 이런 식으로 쓰인다. CFS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인칭 슈팅(FPS)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진행하는 e스포츠 리그다. ‘크로스파이어’가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게임인지 또 설명하자면 ESG가 중요한 세상에서 탄소배출량만 늘릴 뿐이니 설명은 굳이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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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80개국에서 10억명이 즐긴 ‘크로스파이어’ 누적 매출은 135억 달러에 달한다 (2022년 6월 기준) 자료: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는 해외에서만 서비스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국내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왜 갓CFS임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CFS만큼 갓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적당한 e스포츠도 없다. CFS는 게임 자체의 성공 외에도 e스포츠 리그와 토너먼트도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중국, 브라질, 독일, 베트남, 필리핀, 미국, 이집트, 콜롬비아 등 거대 시장과 신흥 시장에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다. (CFS 갤러리 바로가기)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덕에 사회문화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크로스파이어’ 지식재산권(IP)으로 만든 드라마 ‘천월화선: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려 아시아 최초의 실존 게임 기반 e스포츠 드라마 되시겠다.


지금까지 게임이 영상화 된 경우 역할수행게임(RPG)이나 어드벤처 게임의 이야기를 쫓아가거나 아케이드, 슈팅게임의 캐릭터성, 세계관을 살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이상의 영역으로 가려는 순간 여지없이 외면을 받았다. 해당 게임을 하지 않는 관객과 공감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천월화선은 FPS 장르라 방영 전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억 뷰가 넘는 대박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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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과 2020년을 묶는 ‘크로스파이어’다. 자료: 천월화선 갈무리 


천월화선은 중국 e스포츠의 초창기인 2008년과 2019년, 두 시대를 배경으로 평행이론을 다룬다. 크로스파이어 프로게이머 ‘초풍’과 두 다리를 잃고 게임을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노소북’의 꿈을 향한 성장 스토리다. 게임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드라마에서 배우가 연기하며 크로스파이어의 주요 맵과 의상, e스포츠 대회 등 크로스파이어의 IP를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중국 국민게임으로서 시대가 공유하는 기억이 없었다면 공감을 받기 어려웠을 소재다. 우리로 치면 작년 20대부터 40대까지 고루 공감을 받으며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슬램덩크’와 비슷하다고 할까? 


게임을 실감나게 표현해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털게는 브로맨스에 큰 감동을 받았다. 평소에도 땀내나는 사내들이라면 주위에도 한 트럭은 있어서 별 관심이 없었지만 ‘노킹 온 헤븐스도어’, ‘라디오스타’ 처럼 가슴 뜨거운 ‘남남케미’는 보는 재미가 일품이었다. 중국에서는 2020년을 전후해서 ‘남남캐미’를 보여주는 브로맨스가 대중문화에서 큰 주목을 받았는데 천월화선도 그 한 축을 담당했다.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공감할 거다. 보면서 왜 자꾸 울컥울컥 하는지… 참느라 혼났다. 

천월화선도 중국 게이머들에게 이런 기분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자료:SMG HOLDONGS 유튜브 


천월화선은 중국 e스포츠 산업 성장세를 그려내며 역동적으로 성장해가는 e스포츠 산업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중국 e스포츠 산업이 세계에서 가장 급격하게 성장하는 데 크로스파이어와 CFS가 있었다는 걸 고려하면 e스포츠가 사회, 경제, 문화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천월화선은 게임 인기에 기댄 드라마가 아니라 국민게임인 크로스파이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사회문화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사랑을 받은 사례다. 게임-e스포츠-향유세대문화가 잘 결합돼 영향을 주고받는 콘텐츠인 것이다.


불과 10여년 전 만해도 요란한 세기말 감성 의상을 입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머리를 하고 게임하던 시절이 있었다.  ‘공부 안 하고 전자오락이나 하는 좀 특이한 애들’ 수준의 인식이 만연했다. 공영방송에서 진행자가 프로게이머를 초대해서 ‘게임 부작용을 중독자들에게 말해달라’는 둥 ‘오프라인에서도 상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나요?’라는 둥 무례한 질문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취미를 게임이라 하지 못하고 독서, 음악감상으로 적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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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겜밍아웃’이란 캠페인까지 있었겠는가 출처: 게임산업협회 



그런데 요즘 세대는 ‘내가 겜돌이인게 뭐 어때서’라며 숨기지 않는다. 그저 자기 취향 중 하나일 뿐이다. 게임과 e스포츠 그리고 사회가 꾸준히 영양을 주고받으며 교집합을 이룬 영향이다. 

덕분에 e스포츠 팬들이 쓰는 유행어가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고 힘을 가지는 메시지가 됐다. e스포츠가 시대를 대표하는 콘텐츠로서, 엔터테인먼트로서 활용도가 높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앞으로 이런 사례는 더욱 많이 나올 전망이다. 게임의 가치를 기업가치, 산업규모에 국한하려는 시각도 점차 흐려져 게임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제는 크고 지속적인 시장 가치를 찾기 위해서 사랑받는 글로벌 IP로 얼마나 대중에게 어필하고 소통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행복한 추억을 남겨주느냐, 그런 의미에서 CFS의 사례는 e스포츠가 문화 창달 기재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다시 게임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그야말로 ‘갓+CFS’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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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회째를 맞는 CFS 그랜드 파이널에는 중국, EU-MENA, 브라질, 동남아시아 등 4개 권역에서 총 12팀이 출전했다. 총상금은 134만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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