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의 10년을 이끌 세 단어, #다각화 #자본 #스포츠 2019-11-29

 

2004년 굿데이신문의 게임과 e스포츠 업계 출입 기자로 투입됐을 때 다른 매체 선배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내년에도 e스포츠라는 것이 있을까?'라는 주제였습니다. 당시 e스포츠 업계는 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이하 스타1)라는 게임이 메인 스트림을 장악하고 있었고 뒤를 이을 e스포츠 게임들이 딱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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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브루드워의 표지 (출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Wikipedia>


e스포츠 업계를 처음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선배들이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걱정이 컸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에 막 발을 들여놓았고 자리를 잡아볼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결론이 부정적으로 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선배들과의 고민과 달리 e스포츠는 게임 마케팅의 일환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종목은 무궁무진


차례로 예를 들어 보죠. 스타1이 갖고 있었던 한국 e스포츠의 중심축은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이라는 종목으로 축이 바뀌면서 더 많은 팬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팀들이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최강국의 이미지를 굳혔다가 중국에 연달아 왕좌를 내주면서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카트 라이더는 국산 e스포츠 종목으로는 최장수 e스포츠 게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5년 첫 대회를 시작한 이래 15년째 대회를 열고 있고 최근에는 '역주행'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냈습니다. 


국내 게임사가 만든 게임인 플레이어 언노운스 배틀 그라운드(이하 펍지)는 배틀 로얄 장르에서 한 획을 그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e스포츠 리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마일게이트의 크로스파이어 또한 매년 글로벌 대회인 크로스 파이어 스타즈(이하 CFS)라는 e스포츠 행사를 통해 전 세계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죠. 2013년 시작된 이 대회는 매년 규모를 키워가고 있고 출전팀을 선발하기 위한 지역 상시 리그를 열면서 공신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또 인비테이셔널 대회를 통해 필리핀, 브라질, 베트남, 이집트 등 그동안 e스포츠의 불모지로 알려졌던 새로운 지역을 발굴, 육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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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S 2018 결승전 무대> 


대부분의 e스포츠 대회들이 PC를 활용해 진행되지만 최근 들어 모바일 종목도 대거 창설되고 있습니다. 모바일 e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큰 상금을 걸고 열리는 대회는 왕자영요 대회입니다. KPL(King Pro League)이라는 대회는 LoL 월드 챔피언십 상금에 육박하는 금액을 걸고 대회를 열고 있고 중화 문화권 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게임사인 컴투스의 서머너스워 또한 월드 아레나 챔피언십을 작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했고 지난 6월에는 스웨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기를 관전하는 가운데 한국과 스웨덴의 e스포츠 국가 대항 교류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e스포츠 리그들만 나열해도 대단히 많습니다. 여기에 각 나라, 지역의 상황에 맞는 e스포츠 대회들이 진행되고 있으니 한눈에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북미와 유럽은 콘솔 게임을 활용해 리그를 열고 있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모바일 종목의 e스포츠 리그들이 속속 열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게임 마케팅을 위한 대회를 여는 것이 아니라 리그 구조와 팀 시스템, 선수들의 처우까지 감안한 e스포츠 리그가 상황에 맞게 열리고 있는 양상이고 이는 향후 10년 동안 비슷한 트렌드로 이어질 것입니다. 

 

가속화되는 자본화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본 투입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LoL의 경우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북미와 유럽, 중국 지역에서 프랜차이즈를 마쳤습니다. 프랜차이즈란 리그 사무국이 승인하는 단체(팀)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합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NBA 등이 택하고 있는 방식으로, 해당 리그가 정해놓은 규칙을 준수하면 승격강등 시스템 없이 지속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권리를 주는 방식을 말합니다. 


프랜차이즈 도입 소식이 알려지면서 게임단들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포브스가 2019년 11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북미 지역 프로게임단인 클라우드 나인(C9)의 가치는 3억 1000만 달러(한화 약 3,650억 원) 정도로 산출됐고, 2019년에는 더욱 높아져서 4억 달러(한화 약 470억 원)에 달합니다. 이는 북미 지역 대표적인 프로게임단인 솔로미드(TSM)도 비슷하며 그 뒤를 리퀴드, 페이즈 클랜 등이 따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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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가 발표한 e스포츠 팀 평가 (Image: TNL Media, Source: Fobes, Christima Settimi)>


북미 지역은 스포츠 스타들을 앞세운 벤처 캐피털이 게임단에 대한 투자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NBA 스타인 마이클 조던이 리퀴드의 모회사에 투자했고 샤킬 오닐이 NRG e스포츠에 자금을 댔고, 릭 폭스는 에코 폭스라는 팀을 직접 꾸리면서 게임단주 역할을 도맡기도 했습니다. 


축구가 활성화되어 있는 유럽에서는 축구팀들이 e스포츠팀에 관심을 가지면서 샬케04, 파리 생제르맹 등이 LoL은 물론, 다양한 e스포츠 종목의 팀을 만들고 있죠. 한국과 비슷한 스포츠 산업 구조로 되어 있는 터키는 한때 배구 선수인 김연경이 뛰었던 페네르바체, 축구로 유명한 갈라타사라이 등이 e스포츠 팀을 만들었습니다.


중국 e스포츠 시장의 자본화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매년 프랜차이즈 팀이 늘어나고 있는 중국은 대기업의 2, 3세들이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8년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한 인빅터스 게이밍의 게임단주인 왕쓰총은 아버지 왕젠린이 완다 그룹의 회장이며 본인은 게임단과 판다TV 등의 e스포츠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죠. 시장이 활성화되다 보니 나이키가 중국 LoL 리그의 유니폼을 협찬하는 등 후원사들도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e스포츠 시장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기존 프로 스포츠 시장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관심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1020 세대들이 향유하는 문화 가운데 가장 파괴력이 높은 산업은 게임 산업이며 프로게이머들은 대회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을 통해 팬들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죠. 한국이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게임단을 만들었던 것과 달리 북미와 유럽, 중국은 게임단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와 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입니다. 1020 세대가 성장하면서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세대가 될 경우 구매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죠. 트위치나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스트리밍 산업을 통해 PC는 물론, 모바일로도 쉽게 e스포츠를 접하는 시스템이 갖춰졌고 향후 5G와 같은 서비스가 활성화된다면 e스포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식 스포츠와의 접점 노린다 


e스포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정식 스포츠 분야와의 크로스 오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메가 스포츠라고 불리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과 같은 종합 스포츠 대회들이 e스포츠를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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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상징 (출처: Pierre de Coubertin, Wikipedia)>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은 e스포츠를 시범 종목으로 채택하면서 파격을 선보였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 아레나 오브 발러, 프로 에볼루션 사커(PES) 2018, 클래시 로얄 등 6개 종목을 택했고 한국은 리그 오브 레전드와 스타2 종목 선수들이 예선을 통과하며 본선에서 각각 은메달과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2020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는 아직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지만 논의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올림픽에서도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프랑스는 유치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인 토니 에스탕게가 인터뷰를 통해 e스포츠 대표 및 IOC와 e스포츠의 올림픽 유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겠다면서 "올림픽이 새로운 세대의 팬과 관계를 유지하려면 디지털 콘테스트가 정식 스포츠로 간주되어야 한다"라며 관심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스마일게이트가 운영하는 월드 사이버 게임즈(이하 WCG)의 역할도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WCG는 삼성전자가 대회를 열면서 사이버 올림픽이라는 기치를 내걸었고 다양한 e스포츠 종목으로 진행되는 국가 대항전 콘셉트로 진행됐죠.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대회를 열었다가 문을 닫았지만 2017년 스마일게이트가 WCG의 상표권을 인수했고 2019년 중국 시안에서 대회를 재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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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시 취장신구에서 열린 WCG 2019 Xi’an 개막식>

 

WCG와 비슷한 형식의 대회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롱런하지 못했던 이유는 게임사와의 협업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라이엇 게임즈, 밸브,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등 e스포츠 종목의 IP를 갖고 있는 게임사들은 자체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자체 대회에서 우승한 팀, 나라, 선수가 최고로 인정받기를 원하죠. 자체 대회의 챔피언이 다른 대회에서 지는 모습을 원하지도 않고 여러 e스포츠 종목 안에 1/n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원치 않기 때문에 종합 e스포츠 대회들이 살아남기가 어려웠습니다. 


2019년 새롭게 문을 연 WCG가 다른 게임사들과의 협업을 순조롭게 해나가고 조율 능력을 보여준다면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들이 e스포츠 업계와 협업하는 데 있어 좋은 선례, 모범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EDITOR's COMMENT  


#남윤성 데일리e스포츠 기자

100m 스프린터처럼 e스포츠를 취재하다가 이제는 마라토너의 자세로 멀리 넓게 보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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