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기고문] 미첼 레스닉과 함께 고민해보는 창의 교육 2020-07-03


| 창의 교육을 고민하다

 

기업 사회공헌 영역에서 ‘창의 교육’은 중요한 화두다. 특히 IT기업들은 STEM과 같은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창의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이것을 왜 창의 교육이라고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교과목이 코딩으로 바뀌고, 프로젝트형으로 진행된다는 것 외에 학교 교육과 특별한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첨단의 IT 기술과 과학의 원리를 활용한다고 해서 창의교육인 것은 아니다.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창의 교육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관여하면서 많은 고민과 회의가 들었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졌던 나로서는 창의 교육을 실행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절망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 책이 있었다. 바로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 MIT미디어랩이 밝혀낸 창의적 학습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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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 미첼 레스닉, 최두환 역, 다산사이언스>


| 레스닉 교수, 창의적 학습 연구를 집대성하다

 

스크래치(Scratch)의 아버지’로 유명한 MIT 미디어랩의 미첼 레스닉(Mitchel Resnick) 교수는 오랫동안 창의적 학습방법을 연구해왔다. 스크래치는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사용되는 코딩 교육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만 2,500만 명이 넘는다. 레스닉 교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이 첨단 기술을 통해 창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컴퓨터 클럽하우스(Computer Clubhouse)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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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스마일게이트 퓨처랩 미래교육 콘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미첼 레스닉 MIT미디어랩 교수> 


2017년, 그는 창의적 학습에 관한 그간의 연구를 정리해 <Lifelong Kindergarten: Cultivating Creativity through Projects, Passion, Peers, and Play>를 출간했으며 한국어 번역본은 2018년 출간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그의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창의 학습에 대한 사명감이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창의적 두뇌로 성장시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준비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질문이며, 지난 30년간 내 삶과 일에 동기를 부여한 질문이기도 하다.”          


미래 세대가 창의성을 키움으로써 더 행복한 삶을 준비하기 바라는 그의 진심은 책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창의적 학습에 대한 그의 연구와 깊이 있는 통찰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했으며, 아이들의 잠재된 가능성을 향한 그의 열정은 내 마음도 뜨겁게 했다. 레스닉 교수의 책을 통해 우리가 가야 할 미래 교육, 창의 교육의 방향성을 성찰해볼 수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창의적 사고는 언제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중심 요소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창의적 두뇌로서의 삶은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기쁨, 성취감, 목적, 그리고 의미를 제공한다. 커가는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적어도 이 정도는 마땅히 보장받아야 한다.”


| 유치원, 창의적 학습 모델의 시작


레스닉 교수는 창의적 학습방식의 원형을 ‘유치원’에서 찾았다. 유치원을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창의 교육 모델로 보았다. 책의 제목뿐만 아니라, 그가 이끄는 MIT 연구 그룹의 이름이 ‘평생유치원 Lifelong Kindergarten’인 이유다. 유치원의 교육 모델이 가지는 특별한 점은 창의적 사고를 발달시키는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에 있다.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은 창의적 사고의 원동력이다. 아이들은 선순환 과정을 겪으면서 창의적 두뇌가 되기 위한 능력을 개발하고 다듬어나간다. 유치원 아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그것을 시도하고, 대안을 실험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법을 배운다.”


실제로 내가 아들과 블록 놀이를 할 때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놀이가 이어진다. 아들은 악당을 물리치는 우주선을 상상하며 직접 블록으로 만든다.(상상-창작)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다니며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놀이) 하지만 너무 크고 길게 만든 우주선은 쉽게 부러진다. 아빠가 만든 우주선은 작지만 잘 부러지지 않는다.(공유-생각) 그걸 본 아들은 자신의 우주선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멋있고 안정적으로 새롭게 만들어 본다.(다시, 상상-창작)


​그의 MIT 연구 그룹은 유치원 교육과 같은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을 확산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창의적 두뇌로 성장시키기 위한 네 가지 교육지침인 ‘창의적 학습의 4P’를 개발했다. 4P는 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수십 년간 진행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창의적 학습 도구인 스크래치의 지속적인 개발 과정도 이 ‘4P’에 기반을 두고 있다.


“(창의적 학습의 4P) 이것은 프로젝트Projects, 열정Passion, 동료Peers, 놀이Play로 구성된다. 요약하면, 우리 연구 그룹은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아이들이 ‘놀이’하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들과 협력하여 ‘프로젝트’에 ‘열정’을 가지고 빠져들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창의적 두뇌로 성장시키기 위한 4가지 교육 지침


1) 프로젝트 Project: 만들기를 통한 학습


첫 번째 요소인 프로젝트는 ‘자기 주도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제’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창작하는 과정 속에서 학습하는 교육이다. 즉, ‘만들기를 통한 학습 Learning-through-making’이라고 할 수 있다. 레스닉 교수가 레고 브릭에 매력에 느끼는 이유도 여기 있다. 레고가 ‘만들기를 통한 학습’을 유도하는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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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com>


스크래치가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코딩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퍼즐을 기반으로 코딩의 개념을 익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스크래치는 퍼즐이 아닌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게임, 애니메이션, 인터랙티브 스토리를 만들도록 권한다. 언어에 비유한다면 문법을 배우는데 시간을 쏟는 게 아니라 간단한 문법만 배운 다음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다.


2) 열정 Passion: 관심사에 기반한 학습


열정은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의미한다. 선생님이 시키지 않아도, 부모님이 혼내지 않아도 스스로 몰입하여 학습하는 태도를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레스닉 교수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창의 학습 환경인 컴퓨터 클럽하우스를 설계할 때 특히 ‘열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프로젝트가 아이들의 관심사와 연결될 때 열정이 생긴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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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he Clubhouse Network>


학교처럼 모두가 똑같은 과제를 해야 하고, 경쟁해야 하는 교육환경에서는 동기부여가 어렵다. 나의 관심과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자율적 환경에서 비로소 강한 동기부여가 생긴다. 컴퓨터 클럽하우스에는 원하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의무 프로그램이 없다. 아무리 멋지고 좋은 양질의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관심 없는 아이에겐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3) 동료 Peer: 커뮤니티에 기반한 학습


현대 사회에서 혼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양한 능력과 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일이 이루어진다. 어느 분야, 어느 조직에서든 협업과 소통 능력이 필수적이다. 창의적인 생각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연결될 때 떠오른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조합하면서 기존에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레스닉 교수도 아이들이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동료 기반 학습Peer-based Learning’을 중요시한다. 스크래치는 단순한 코딩 학습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이 함께 만들고, 공유하고, 배우는 새로운 유형의 온라인 학습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프로젝트를 통해 영감을 받고, 다른 이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함께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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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IT News>


컴퓨터 클럽하우스의 멘토링도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요소다. 레스닉 교수가 생각하는 훌륭한 선생님과 멘토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자(Catalyst), 새로운 기술 사용이나 새로운 아디이어 개발을 도와주는 컨설턴트(Consultant),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학생들을 서로 연결하는 연결자(Connector),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하며 아이들과 협력하는 협력자(Collaborator)이다. 한 마디로 학습 커뮤니티의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4) 놀이 Play: 실험과 도전에 기반한 학습


창의적 학습에 기여하는 ‘놀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놀이’의 이미지와 다르다. 마냥 재밌고 즐거운 분위기의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레스닉 교수가 말하는 놀이는 실험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놀이’라는 행위 보다 ‘장난기’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모든 놀이가 창의적인 학습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터프츠 대학교의 마리나 버스 교수는 놀이울(playpen)과 놀이터(playground) 사이의 차이를 지적한다. 놀이울은 제한적인 환경으로 실험의 자유와 탐구의 자율성이 없다. 반대로 놀이터는 아이들에게 움직이고 탐구하고 실험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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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놀이울(playpen)과 놀이터(playground)>


그런데 아이들은 서로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놀고 배우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 특히, 아이들은 장난감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만들기꾼’과 ‘이야기꾼’으로 나눌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아이들을 ‘창의적 두뇌’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서로 다른 유형의 놀이 방식과 학습 방식을 지원해야 한다. 


창의적 학습을 위한 10가지 도움말 

 

레스닉 교수가 말하는 4P는 기술적이기보다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이다. 당장 사회공헌 교육사업 에 접목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책의 말미에는 창의적 학습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교사와 부모를 위한 10가지 도움말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싶은 교사, 부모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 지침이며, 창의 교육을 고민하는 사회공헌 담당자에게는 중요한 실무 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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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부모를 위한 10가지 도움말 (책에는 보다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미첼 레스닉의 평생유치원>이 제시하는 창의적 학습를 위한 조언들은 창의 교육에 대한 영감을 준다. 하지만 책 한 권 읽는다고 창의 교육을 기획할 수 있는 인사이트가 생기지는 않는다.


특히 레스닉 교수의 창의적 학습 지침은 교육의 기술 혹은 공식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가능성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애정 어린 태도이자, 관심사에 기반한 창작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과 철학이다. 글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느끼고 체화해야 하는 교육 철학이자 문화이다. 그래서 이 지침을 글로 배워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를 위한 프로젝트부터 도전해 보기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내 안의 숨겨진 창의성과 가능성을 발견해보자. 인사이트는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쌓이는 것이지, 책상 앞에서 나오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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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com>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회사의 임직원 프로그램에 참여해 독립출판 프로젝트에 도전했었다. 멘토링을 받으며 평소 상상만 했던 나만의 책 출판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직접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펀딩까지 하는 멋진 경험을 가지면서, 관심사 기반의 창작 활동이 주는 흥분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나도 모르는 창의 교육을 막연히 누군가의 미래를 위해 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먼저 경험하고 공감해야 아이들과 선생님, 부모님들에게도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다. 레스닉 교수의 말대로, 아이들이 삶에 대한 기쁨, 성취감, 목적, 그리고 의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글: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 박재희 차장

* 위 내용은 이노소셜랩 블로그 기고문을 편집했습니다. 

 


EDITOR's COMMENT 


Future Lab (퓨처랩)

무엇이든 제한 없이 상상하고, 그것을 나만의 방법으로 실제화하는 실험실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어린이부터, 창작에 몰두한 청년.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경계를 허무는 예술가와 각자 속한 영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이들이 Future Lab을 놀이터 삼아 즐거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Future Lab 자세히 보기: http://www.smilegatefoundation.org/te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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