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가 공간의 웅장함에 압도되거나 보스 전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상 공간에 논리를 부여하고 유저의 플레이 흐름을 디자인하는 ‘레벨 디자인’ 덕분입니다.
레벨 디자인은 게임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스마일게이트 레벨기획팀 권용진 파트장을 만나, 레벨디자인은 어떤 일인지 그리고 레벨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기술적 구현을 넘어 유저의 마음을 읽는 '공감'이 어떻게 게임의 완성도를 결정짓는지,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듬어지는 레벨 디자인의 디테일한 작업 여정을 소개합니다.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스트아크’ 레벨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권용진입니다. 2016년 1월 4일 입사 이후 10년째 레벨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Q. ‘레벨 디자인’이라는 직무가 낯선 분들도 있을텐데요. 직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직무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회사마다 그 역할과 범위가 다른 만큼 설명이 쉽지는 않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레벨디자인은 유저들이 뛰어놀고, 전투하고, 미션을 수행하는 모든 공간을 디자인하는 직무입니다. 또한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어떻게 행동하게 할지, 그 행동을 통해 어떤 느낌을 갖게 할지 설계하는 일도 하는데요. 즉, 게임 속에 구현된 공간뿐 아니라, 유저의 플레이 흐름과 감정 곡선을 예측하고 디자인하는 일까지 모두 레벨디자이너의 업무 영역입니다.
Q. 레벨 디자인의 ‘레벨’은 어떤 의미인가요?
‘레벨’은 공간의 단차, 단계 같은 구조적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층에서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공간의 높낮이나 구성에 따라 단계를 나누는 것이죠.
이러한 플로우 개념이 공간적인 측면에서의 레벨이라면, 플레이어의 경험도 레벨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공간에서 유저가 경험하는 감정의 강도나 흐름을 의미하는 거죠. 예를 들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레벨이 최대 10까지 있다면, 7레벨 정도에서는 도전 욕구를 자극하지만, 8이나 9 수준까지 올라가면 오히려 불쾌감이 생겨요. 이처럼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일도 레벨디자인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공포 게임을 만든다고 해볼게요. 유저에게 심리적인 공포감을 줄 것인지, 괴물 같은 것을 등장시켜 물리적인 공포감을 줄 것인지 기획 방향에 따라 공간 설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만약 심리적인 공포감을 줘야 한다면 폐쇄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무엇인가에 쫓기는 상황이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공간이 오히려 공포감을 극대화할 수도 있구요. 유저에게 불안감을 줘야 한다면 폐쇄된 실내 콘셉트에 복도와 계단, 여러 개의 방과 문을 만드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선 게임의 콘셉트와 기획에 맞춰 전체 공간을 설계하고, 이후 유저의 감정선을 세밀하게 그리면서 세부적인 공간 및 디자인 요소들을 차곡차곡 채워 나갑니다. 단계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듬으면서, 게임 공간에 감정과 이야기를 덧입히는 거죠.
Q. 기획자,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등 다른 팀과는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요?
콘텐츠의 종류에 따라 협업 방식도 달라져요. 예를 들어 시작과 끝이 명확한 선형 구조의 스토리인 경우 레벨디자인 파트에서 주도적으로 협업을 진행합니다. 유저의 감정 흐름에 따라 공간 설계와 연출 방법을 고민한 후 퀘스트팀, 시나리오팀, 전투팀, 아트팀과 조율합니다.
반면 로스트아크의 카오스 던전처럼 유저가 이동 없이 특정한 공간에서 플레이하는 경우에는, 콘텐츠 기획팀이 주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콘텐츠 기획팀이 ‘이런 유형의 레벨디자인이 필요하다’라고 요청하면, 그 유형에 맞는 공간의 크기나 형태 등을 레벨디자인팀에서 디자인하는 식이죠.

Q. 좋은 협업을 끌어내는 파트장님만의 노하우도 있을까요?
협업을 할 때 ‘어떻게든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자세로 접근해요. 예를 들어 어떤 팀에서 롯데타워 같은 초고층 건물을 만들어 달라 요청했다고 해볼게요. 123층짜리 초고층 타워를 구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리소스도 많이 들어요. 그럴 때 저는 그 공간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감정’이 뭔지 꼭 물어봐요. 높이가 주는 압도감을 유저에게 제공하고 싶은 거라면, 꼭 123층일 필요는 없잖아요. 의도에 부합하되,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하면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거죠.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보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가능하다’라는 식으로 설득합니다. 좋은 게임으로 즐거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결국 같으니까요.
Q. 어릴 때부터 레벨디자이너를 꿈꾸셨나요? 로스트아크 레벨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서사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레벨디자이너라는 직무를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막연히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이 이어져 게임기획 관련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군 제대 후 고민이 커졌어요.
‘내 기획이 실제 게임으로 구현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기면서, 그래픽이든 프로그래밍이든 한 가지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학 대신 그래픽 학원 등록을 선택했고, 1년 후 그래픽 배경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요. 일은 정말 재미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나는 게임 기획자니까 그 꿈을 잊으면 안 돼’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같은 팀에 모션을 담당하는 직원이 퇴사했을 때 자진해서 그 업무를 맡았죠. 임팩트 담당이 퇴사했을 때도 제가 그 업무까지 책임졌어요. 다양한 직무를 경험해 봐야, 훗날 더 세밀하게 게임을 기획할 수 있을 테고, 다른 팀과도 더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월급 100만 원 받던 시절에, 한 달 학원비가 40만 원이 나와도 즐거웠어요. 이후 기획팀으로 이직하면서 처음으로 레벨디자인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련의 과정이 지금 레벨디자이너로 일하는 데 든든한 자산이 되었죠.

Q. 게임 기획 전공자로 시작해 레벨디자이너가 되신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습니다. 좋은 레벨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변 사람들은 저를 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T형 인간’이라고 해요. 하지만 레벨디자인을 할 때만큼은 스스로 감정을 중시하고 공감할 줄 아는 ‘F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합니다.
저는 플레이어가 어떤 공간, 예를 들면 성당에 들어섰을 때, 그 공간을 탐색하고 분위기를 느낄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둥, 액자, 조명 같은 시각적 요소들이 주는 정보와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받아들일 시간을 줘야 하죠.
그런 여유 없이 시작부터 몬스터가 튀어나오면, 그 공간은 단순한 전투장으로만 남게 돼요.
반대로 플레이어가 공간의 디테일을 인지하고, 다음을 상상할 수 있게 설계하면,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퍼즐처럼 그 의미를 떠올릴 수 있어요. ‘아, 그래서 그때 그 액자가 그 공간에 있었구나’ 하고 말이죠.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기술적인 능력만으로는 부족해요.
유저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끊임없이 공감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레벨디자이너는 F적 코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력은 첫 번째 기본 덕목이고요. (웃음)
Q. 작업하신 프로젝트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거나 큰 성과를 거두었던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모든 프로젝트가 다 의미 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가장 큰 성과를 낸 건 단연 로스트아크죠. 특히 게임의 클라이맥스인 ‘카양겔’ 던전은 제가 디자인한 공간이라 애착이 큽니다. 유저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디자인이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캐릭터가 신과 같은 거대한 존재에 맞서 싸우는 구도를 담아야 했는데요. 그래서 인간의 관점에서 가능한 비효율적이면서 압도적인 공간을 설계하려 했어요. 유저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내가 하늘 끝까지 올라 신과 마주하고 있구나’라는 경외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또 한편으로는, 그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선 유저들에게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공간에 담고 싶었습니다

Q.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나 실수담도 궁금합니다.
10년 전쯤 섬 하나를 만든 적이 있어요. 섬 안에서는 몬스터뿐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도 적으로 설정돼 있었죠. 저는 이 복잡한 전투가 긍정적인 의미로 다이내믹한 난장판이 되리라 생각했는데요. 그냥 난장판이 됐어요. (웃음)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내가 누구를 때렸는지, 누구한테 맞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이토록 감정도 재미도 남지 않은 콘텐츠라니.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꽤 큰 실수였네요. (웃음)
Q. 쾌적한 레벨디자인을 선보이기 위해서 특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다양한 유저의 입장이 되어 무수히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 유저마다 게임을 하는 방식도 게임 안에서 느끼는 감정도 천차만별이니까요. 과장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300번 이상 시연해 보는 것 같아요. 그저 숫자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측하면서 말이죠. 지루함을 이겨내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Q. 레벨디자이너가 되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거의 매일 느끼고 있어요. 직업 만족도 최상입니다.(웃음) 워낙 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을 직접 만드는 일이 즐거울 수밖에요. 솔직히 아주 가끔은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즐기면서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만약 ‘오늘 밤새 게임 만들어야 해’라고 해도 기꺼이 OK 할 정도로요. 상상이 실제 게임으로 구현되는 과정이 너무 신이 나요. 무엇보다 처음 기획서에 썼던 의도대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반응을 마주했을 때, ‘게임 만드는 일 하길 참 잘했다’라고 느낍니다.
Q. 레벨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제가 귀여운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웃음)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따뜻한 공간,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저의 꿈, 언젠가는 꼭 이룰 수 있겠죠?
단, 콘텐츠를 기사에서 인용 시 ‘스마일게이트 뉴스룸’으로 표기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