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시선을 끄는 장르가 있다. 건설+생존+멀티플레이+성장+전투를 섞어놓은 장르다. 좀 있어 보이는 말로 표현하면 샌드박스 오픈월드 생존 RPG쯤 되겠다. 여기에 뱀파이어를 집어넣는다거나, 수집형 몬스터를 집어넣는다거나, 공룡과 좀비를 한 숟가락 넣으면 일단 주목받는 데는 성공한다. 공학적 지식까지 넣으면? ‘갓겜’ 반열에 오르는 거다. 만약 상장된 회사의 티저 트레일러라면? 그냥 바로 상한가로 가는 거다.
이런 게임은 무척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생각하기는 쉬워서 제작에 도전하는 경우가 매우 매우 많다. 도트는 물론이고 풀패키지 AAA급 게임까지 한 번씩은 시도해본다. 함량미달의 테스트 빌드가 나오고 드랍 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어찌어찌 나와도 회사가 폐업할 만큼 비난을 받고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브와 스팀(글로벌)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프 선셋’은 소규모 인력이 제작했음에도 론칭에 성공했다. 첫 인상도 좋다.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모습을 대체로 잘 구현했다.
그렇다는 건 이미 갓겜 향기가 조금은 풍긴다는 뜻이다. 물론 그 향기가 진짜 바나나 우유에서 나는 바나나 향인지 바나나향 우유에서 나는 합성착색료와 합성 바나나향인지는 직접 먹어야만 알 수 있다.
<바보인 건 어떻게 알았지?>
‘이프선셋’은 무인도에서 생존하는 게임이다. 당신은 폭풍우로 배가 난파돼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된다. 낮에는 자원을 수집하고 밤에는 몰려오는 적을 방어하며 생존해야 한다.
배경만 봐도 딱 느낌이 온다. 생존일지를 써가면서 설정 놀이하면서 놀기 딱 좋은 게임이라는 것을. 당신 혼자 ‘로스트’를 찍든 ‘무쌍’을 찍든 ‘프로젝트좀보이드’를 찍든, ‘섬란 카구라’를 찍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함정이 하나 껴 있는 것 같지만 상상력에 불가능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은 낮에 섬을 탐험하며 자원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생존이 잘 안 와닿을 수 있다. 무인도의 첫인상이 휴양지 같기 때문이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잔잔한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임무를 주면서 귀찮게 하는 요정 친구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에 왜 왔더라?"라는 질문이 들 정도로 평화롭다.
이런 섬에서 자원을 수집해 생존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 나뭇가지, 돌멩이, 물고기를 모으며 손수 건축하고, 요리하고,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 나무, 돌을 수집할 도구도 만들어야 한다. 캠프파이어, 작업대, 침대를 만들고 있노라면 흡사 ‘스타듀밸리’를 하는 거 같다. 나중에 농사도 지을 수 있다.
<화성에서 감자키우는 마음이 이랬을까>
캐릭터는 당신처럼 음식을 먹어야 한다. 생으로 먹거나 구워 먹을 수 있다. 물도 잘 먹어야 한다. 그러면서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적인 탐험이 가능하다.
퇴근하고 왔는데 왜 계속 일을 하는가를 고민할 때쯤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 야생동물에게 쫓기는 게 대표적이다. 네 발 달린 공격적인 생물과 첫 조우 때부터 야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된다. 왜 인류가 도구를 쓰게 됐는지도 알게 된다. 분명 도구와 불을 쓸 줄 몰랐다면 인류는 야생에서 진작에 도태됐을 것이다.
그 후에는 몬스터의 이빨보다 제한된 인벤토리와 끝없는 자원 수집 루틴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집을 확장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 반영이랄까. 더욱 가열차게 수집하게 만든다. 낚시를 실패할 때도 현실과 오버랩 된다. 언제나 손맛을 느끼러 가지만 실제 맛보는 건 사무장이 썰어주는 회의 맛뿐이라는 걸 게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약간은 목가적인 게임 분위기는 해가 지는 순간부터 180도 변한다. 밤에는 몰려오는 적을 방어하며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좀비 같은 친구들은 사방에서 몰려온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함정과 무기로 물리쳐야 한다. 처음에는 어슬렁 거리는 익사체 친구들만 등장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고공강하 폭격하는 가오리나 벙커버스터처럼 나만 골라서 줘 패는 친구들이 등장한다.
전투는 단순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창이나 주먹을 쓰다가 활을 쓰면 “역시 주몽의 후손”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잘 설치한 함정에 적들이 갈려 나가면 제갈공명과 바둑을 두는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적이 모든 장애물을 이기고 내 눈앞에 나타나면 의기양양했던 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기는 하지만…
함정과 무기 그리고 나만 느끼는 신컨을 이용해 밤을 지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름다운 무인도가 다시 펼쳐진다. 밤에 익사체나 괴물들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뒤에는 복구와 생존이 남는다. 함정을 복구하고 먹을 물과 식량을 또 구해야 한다. 날이 갈 수록 방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건물을 효과적으로 지어 방어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방어했을 때 성취감과 전리품으로 나만의 성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무척 뿌듯하다.
<아파트아파트아파트아파트♬는 아니지만 대출없는 내 집이다>
종합적으로 ‘이프선셋’의 밤은 이 게임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묘하다. 적들을 물리칠 때마다 “내가 해냈다!”는 희열과 함께 "이제 밥이나 먹자"는 피로감이 함께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걸 게임 속 시간으로 며칠을 계속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지루함이 느껴진다. 낮밤이 반복된다는 점, 샌드박스형 게임 특유의 입문장벽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혹은 ‘같은 행동을 계속 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프선셋은 튜토리얼과 퀘스트로 이를 해결한다. 로라를 구한다든가, 스킬트리로 장기적 목표를 제공한다 거나하는 식이다. 스킬은 전문화된 액티브, 패시브 스킬들이 있어 육성방향을 잡고 성장하는 재미를 준다.
나는 로라를 구해냈을 때의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그래, 돈! 내 삶의 유일한 목적!, 인류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선물!”... 원화 채굴할 시간도 부족한데 게임을 하면서 그것도 힐링이 아닌 작업을 하는 내 모습에 묘한 희열을 느끼면서 게임을 계속했다. 스킬을 찍고자 했던 이유였다. 개발자가 원했던 대로 시스템이 돌아 감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무서워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하는 이 게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멀티플레이다. 지금은 조금 불안정한 환경에서 최대 2명의 멀티플레이를 제공한다. 대전액션 게임도 아니고 최대 2명이다. 내가 남중복도에서 생존에 심혈을 기울이던 시절 나온 ‘스타크래프트’도 8명 멀티는 지원했다.
다인 플레이의 부재가 아쉬운 이유는 단 둘이서만 플레이해도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싱글 플레이 때 매일 보는 그저 그런 석양이 지는 화면에서도 멀티플레이는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싱글 플레이일 때는 나의 명상을 아무도 방해하지는 않지만 멀티에서는 친구가 일하지 않냐고 타박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석양이 아름다우니 보라고 말한다. 그럼 친구도 내 옆에 앉는다. 그리고는 오늘 회사에 있었던 일을 서로 나눈다.
물론 실제로 내 친구와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험한 말을 주고받았지만, 아무튼 간에 예전 마비노기 모닥불 감성이 떠올랐다. 게임이 계속 진행될 수록 우리는 효율적으로 재료를 수집하고 효과적으로 적을 막는 데에만 모든 에너지를 썼지만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눈 대화는 제법 괜찮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육아 때문에 자주 볼 수 없는 친구지만 이렇게 서로 떠들면서 노니까 무척 좋았다. 한 번은 이야기하면서 게임하다가 맥주 한 캔씩 하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그러다 맥주가 소주가 되고 소주가 위스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술기운인지 게임 때문인지 둘 다 와이프에게 혼날 정도로 떠들썩하게 게임을 하며 밤을 지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경험을 4명이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 혼자 만들고 혼자 맛 보고 혼자 평가하고>
멀티플레이처럼 여러가지 재미있는 포인트에도 불구하고 ‘이프선셋’은 개선할 점이 다수 존재한다. 최적화도 부족하고 버그도 많다. 하지만 얼리억세스임을 고려하면 감내할만하다. 개발자들은 피드백을 받아 자주 업데이트하고 있다. 마치 내가 게임 안에서 생존할 동안 그들은 게임을 생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통해 게임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된다.
전체적으로 '이프선셋'은 기존 오픈월드 생존 게임들의 장점 때문에 입문자에게도 익숙한 느낌을 준다. 만약 생존 게임을 즐기고, 창의적으로 기지를 건설하며 환경과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면, 무척 흥미로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취향에 맞아 생존일지를 쓰면서 플레이할 정도라면? 몇 백시간이고 붙잡고 할만한 게임이 틀림없다. 또한 생존일지를 공유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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