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를 아시나요?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누구나 IP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시대. 하지만 IP의 범위는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알쏭달쏭한 IP의 정의와 기초 지식부터,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에서 IP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메가 IP’를 발굴하고, 성장시킬 것인지 IP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드립니다.
1화 : IP를 아시나요?
2회 : 콘텐츠 IP, 왜 21세기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를까요?
3회 : 메가 IP, 어떻게 키울 것인가?
l BTS도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희귀템의 정체는?
“더 팔아주세요”
지난 3월, 세계적인 K-POP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피드입니다. 천하의 BTS조차 구할 수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희귀템의 정체는? 바로 포켓몬빵입니다. 이 빵을 구하기 편의점과 마트에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긴 줄을 섰고, 순식간에 상품이 매진되는 바람에 매장 직원들이 고객 응대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2022년 2월 포켓몬빵을 출시한 SPC에 따르면, 이 빵은 출시 첫 주에만 150만 개가 판매됐고, 3월 750만 개, 4월 960만 개가 팔렸습니다. 포켓몬빵은 2,000만 개 이상이 판매되며 출시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품귀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포켓몬빵’ 신드롬의 주인공은 정확히 말하면 ‘빵’이 아닙니다. ‘포켓몬빵’에 들어있는 포켓몬 캐릭터의 ‘띠부띠부씰(떼었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이죠. 한국에서 포켓몬빵이 출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99년 출시되어 당시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뒤로 몇 년마다 한 번씩 출시됐습니다. 어린 시절 포켓몬스터 게임을 했던 유저들은 이제 3040세대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추억의 포켓몬 캐릭터 상품’에 흔쾌히 지갑을 열죠. 단순히 ‘추억의 캐릭터’가 아닙니다. 만화와 영화를 통해 포켓몬 스토리를 접한 어린 세대도 열혈 구매자입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강력한 충성 고객을 확보한 포켓몬 신드롬의 핵심은 포켓몬이라는 IP의 힘입니다. 특히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IP를 업계에서는 ‘메가 IP’로 통칭합니다. 단순히 게임, 캐릭터, 영화, 애니메이션 시리즈 등 ‘개별 상품의 성공’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독자적인 유니버스(Universe)를 구축하는 것이 ‘메가 IP’의 힘이죠. 메가 IP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가 있습니다. 닌텐도의 포켓몬 IP가 창출한 매출은 1996년부터 현재까지 약 132조 원으로 추정됩니다. 잘 키운 ‘메가 IP’ 하나가 한 회사를 20여 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l IP란 무엇이고, 왜 ‘미래의 먹거리’일까?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나를 존재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IP이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갑부이기도 하죠. 빌 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IP(지식재산, Intellectual Property)이란 무엇일까요. 그의 첫 IP는 윈도우(Window)라는 컴퓨터 운영체제 프로그램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수학과 학생이었던 빌 게이츠는 점차 개인 PC 사용자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고, 폴 앨런과 함께 개인용 컴퓨터에 특화된 운영체제를 개발합니다. 윈도우는 출시되자마자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윈도우 점유율은 90%에 육박하게 됐고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적 활동의 결과물’ 즉 지식재산의 엄청난 힘을 경험하면서, 지식재산권에 눈을 뜹니다. 이후 빌 게이츠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의 특허 보유에 몰두합니다. 빌 게이츠가 퇴임한 뒤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에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죠.
아직도 인터넷 검색에 IP를 입력하면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이 최상단에 검색됩니다. 인터넷 시대의 중요한 규약이지만 미래의 먹거리는 아닙니다.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 재산이란 인간의 창조적 활동이나 경험을 통해 창출한 지식, 정보, 기술, 표현, 표시 등 모든 ‘무형적인 재산’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적 창작물에 법적인 권리를 부여한 것이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22조 2항에서도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식재산권 보호의 토대가 됩니다. 지식재산과 지식재산권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지식재산’이라는 말속에 지적 창작물이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개인의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보호해야하기 때문에 관련 법률로 보호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인간의 창조적 활동이나 경험을 통해 창출한 지식, 정보, 기술, 표현, 표시 등 모든 ‘무형적인 재산’인 IP의 범위는 엄청나게 방대합니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 발생하는 창조 활동이 재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지식재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하면서 사실상 인간의 모든 창작, 창조 활동의 결과까지 지식재산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재산을 어떻게 보호하고 증대시키느냐가 21세기 모든 부문의 산업의 화두가 됐고, IP를 미래의 먹거리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미래의 먹거리 IP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시 마이크로소프트로 돌아가 볼까요. 마이크로 소프트는 지난 2020년 '엘더 스크롤', '폴아웃', '둠' 시리즈 IP와 개발사를 보유한 제니맥스 미디어를 우리 돈으로 약 8조7천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또한 2022년 1월,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콜 오브 듀티' 등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게임을 보유한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한화로 82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 거래이자, IT 업계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는 82조 원을 현금성 자산으로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 6월 현재 미국의 기업 간 인수합병을 심사하는 연방거래위원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블리자드 인수를 심사 중이지만, 인수는 긍정적으로 예상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왜 이렇게 게임 회사를 탐냈을까요? 바로 IP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니맥스 미디어의 ‘폴아웃’ ‘둠’ 등은 유명한 게임이기도 하지만 콘텐츠 IP로 할리우드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영상화를 하고 있습니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등 PC·온라인게임과 캔디 크러쉬 사가 등 인기 모바일게임 IP을 보유하고 있죠.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명 게임사를 인수합병해서 글로벌 게임 산업에서 텐센트, 소니에 이어 매출 기준 세계 3위의 기업으로 성큼 성장하는 한편, 사용자의 충성도가 높은 IP를 확보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겠다는 선포였던 겁니다.
l 4차 산업혁명 시대와 IP의 상관관계
21세기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2016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입니다. 세계경제포럼은 전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인을 비롯해 경제학 부문의 석학, 정치인, 언론인 등 각계각층 전문가가 모여서 시대적 과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이 포럼에서 나온 중요한 이야기들은 곧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비즈니스 생태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의 회장 클라우스 슈밥은 4차 산업혁명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디지털 혁명인 3차 산업혁명에 기반을 두고, 디지털, 바이오, 물리학 등 기존 영역의 경계가 융합하는 ‘기술혁명’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융합’과 ‘기술’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전의 산업 혁명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봐야 합니다.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에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됐습니다. 증기기관을 기반으로 사회 전반에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된 거죠. 뒤를 이은 2차 산업혁명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전기 에너지가 증기 에너지를 대체하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변화를 의미합니다. 전기에너지의 발달은 3차 산업혁명을 촉발합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탄생하면서 지식정보가 폭발적으로 확산된 거죠. 그리고 21세기 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의 정보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전세계 산업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죠.
산업의 형태로 본다면 1차 산업혁명을 통해 농업사회에서 공장사회로, 2차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3차 산업혁명을 통해 컴퓨터가 등장해 정보 처리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죠. 그리고 이제 막 대두한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기반의 새로운 산업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격변이 아니어서, 체감 지수가 높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현재는 3차 산업혁명에서 막 4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하고 있는 시기여서 더욱 그렇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가 되기 위한 전 세계 리딩 그룹의 전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지금 선두에 서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 ‘미래의 먹거리’가 바로 IP입니다.
l 자유로운 확장성과 높은 충성도의 메가 IP
IP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OSMU)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원소스멀티유즈는 1980년대 초 일본 전자공학계에서 사용했던 개념입니다. 하나의 소스를 디지털화해서 다양한 매체에 맞는 결과물로 만드는 전략이었죠. 하나의 소스로 다양한 결과를 만드니 비용이 적게 들고 수익은 커졌습니다. 이 개념이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로 전파되면서 ‘하나의 원천 콘텐츠를 다양한 미디어에 적용해서 파생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확장됐습니다. 예를 들면 인기 소설과 웹툰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 것이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죠. 원소스멀티유즈와 메가 IP 비즈니스는 유사해보이지만, IP 비즈니스가 훨씬 더 넓고 큰 방식입니다.
다시 포켓몬스터로 돌아가볼까요. 포켓몬스터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1996년이니 26년 전입니다. 가정용 콘솔 게임을 만든 일본의 게임회사 닌텐도에서 내놓은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용 소프트 ‘포켓몬스터’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몬스터볼’이라는 포획 장치로 포획한 뒤 육성하는 단순한 방식이죠. 포켓몬 게임은 수집과 RPG 게임을 결합시킨 플레이 방식으로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에 힘입어 여러 상품이 나왔지만, 이렇게 ‘그릇만 다르게’ 포장한다고 포켓몬이 2022년 현재까지도 가장 ‘핫한 IP’가 된 건 아닙니다. 그 사이 포켓몬은 새로운 ‘세대’ 포켓몬을 내놓는 동시에, 원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화책, 애니메이션 시리즈, 영화를 만들어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로 세계관을 확장했습니다. 2016년에는 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한 ‘포켓몬 고’를 출시해서 또 한 번 기술적 확장을 일궈냈죠. 이처럼 스토리와 세계관, 기술의 확장 더불어 수집과 육성이라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전략으로 메가 IP를 만들었고, 20여 년간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은 스마일게이트 역시 확장성 높은 메가 IP 전략을 성공시키고 있습니다.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한 스마일게이트의 대표 메가 IP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36부작 드라마 <천월화선>로 제작되어 중국에서 총 20억 뷰를 기록했습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 소니 픽쳐스와 함께 영화로도 제작하고 있죠. 또한 중국 광저우에 크로스파이어 테마파크인 ‘천월화선:화선전장’을 런칭해 오프라인으로도 IP를 확장시켰습니다.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판타지 세계관으로 사랑받는 게임 <에픽세븐> IP 역시 웹소설과 보드게임 등으로 확장되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충성도 높은 메가 IP는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변형되어 새로운 비즈니스로 확장됩니다.
l 21세기의 필수 먹거리 메가 IP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성공한 IP 인기 지속 기간은 평균 8년이지만, 게임과 웹툰·만화는 10년 이상으로 다른 장르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는 2021년 ‘게임산업 전체 가치가 현재 영화·음악시장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라는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21세기의 필수 먹거리 ‘메가 IP’ 중에서도 게임 IP가 크게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IP의 세계관이 확장되어 또 다른 오리지널 IP로 이어지고, 다시 충성도 높은 이용자가 합류하는 무한 확장 비즈니스. IP 비즈니스를 선도해야만 미래의 성공에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는 메가 IP 비즈니스가 왜 ‘21세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리는지, 놀라운 성과의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글 최성택 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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