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인디 게임 추천ㅣ사람은 평생 뭔가를 키운다. 게임에서도 키운다. 2026-10-29

사람은 평생 뭔가를 키운다.


초등학생 땐 다마고치를 키웠다. 사흘 만에 죽였다. 중학생 땐 키를 키우겠다며 우유를 들이붓고 농구를 했다. 키는 안 컸다. 그때 붙은 등빨은 나중에 미식축구할 때 요긴했다. 군대에선 짬을 키웠고, 회사에 와서는 뱃살을 키웠다. 요즘은 주식 계좌를 키우는 중이다. 마이너스로 크는 것도 크는 거라면 열심히 키우는 중인 게 맞다.


현실의 육성은 대체로 배신한다. 물을 줘도 안 자라고, 비료를 주면 엉뚱한 데로 자란다. 게임은 다르다. 스탯 창은 거짓말을 안 한다. 넣은 만큼 오르고, 오른 만큼 보인다. 앱 마켓에 ‘OO 키우기'가 끝도 없이 올라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뭘 키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키우기' 세 글자에 손가락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10월호는 키우는 게임을 가져왔다. 아들을 키우고, 빌드를 키우고, 용사단을 키우고, 과일을 합쳐 수박을 키운다. 대상은 제각각인데 원리는 하나다. 오늘 들인 공이 내일 숫자로 돌아온다. 현실에선 좀처럼 없는 일이다.


어이쿠! 왕자님 ~호감가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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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프린세스 메이커 2'로 딸을 키우던 아빠들이 있었다. 상당수는 DD파일과 풍유환에 눈이 충혈된 학생이었다. 소녀들은 다른 생각을 했다. 왜 딸만 키우나. 아들은 안 되나. 기왕이면 BL도 좀 묻혀서.


그 불만이 게임이 됐다. 동인팀 '대인배들'이 2008년 서울코믹월드에서 내놓은 '어이쿠! 왕자님'이다. 플레이어는 부모가 돼 아들을 키운다. 학원을 보내고, 알바를 시키고, 식단을 짜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바캉스도 보낸다. 프메2 문법 그대로다.


다른 건 결말이다. 다 큰 아들은 일곱 명의 훈남 중 하나와 사랑에 빠진다. BL 육성 시뮬레이션이다. 아들의 기본 이름은 '로에'다. 뒤집어 읽으면 제작진의 의도가 보인다.


육아 철학도 남다르다. 어떤 알바를 시키고 무엇을 먹이느냐가 숨겨진 게이지를 움직인다. 그 게이지가 아들의 연애 포지션까지 정한다. 광산에서 삽질한 아들과 미용실에서 가위 잡은 아들은 다른 남자가 된다. 맹모삼천지교가 이런 뜻이었나 싶다.


2023년엔 15주년 리마스터판이 나왔다. 텀블벅에 1만5천여 명이 몰려 13억5800만원을 모았다. 당시 텀블벅 디지털게임 최고 기록이다. 


2008년 원작이 워낙 수위가 높았기 때문에 리마스터판이 나오기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프린세스메이커에 백합을 끼어넣었다면 문체부 소관이 아니라 법무부에서 다뤄야할 일이다. 다행히 개발사는 열 번 넘게 고쳐 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아냈다. 아들 하나 세상에 내보내기가 이렇게 어렵다.


15년 키운 그 아들이 이번 달 스토브에 왔다. 이제 남의 집 PC에서도 잘 클 차례다. 최-신 게임은 아니지만 육성 시뮬레이션+연애 시뮬레이션 한국 동인 게임이 드물어서 그런지 여성향 쪽에서는 바이블로 추앙받는 게임이다. 역시 다양한 취향이 모이고 넘치는 스토브다.


네온 어비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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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세상을 망쳤다. 주인공은 뉴 아테네에서 쓰러진 뒤 깨닫는다. 이 세계에선 죽는 게 쉽고 살아남는 게 형벌이다. 월요일 아침 2호선과 같은 세계관이다.

'네온 어비스 2'는 사이버펑크와 신화를 픽셀아트로 버무린 로그라이크 액션이다. 전작은 전 세계에서 100만 장 넘게 팔렸다. 스마일게이트가 한국 공동 퍼블리싱을 맡았다. 1년 넘는 얼리액세스를 거쳐 10월 8일 스토브와 스팀, 콘솔로 정식 출시했다. 전작엔 없던 한국어도 정식 지원한다.


이 게임에서 키우는 건 빌드다. 방을 돌며 아이템을 줍는다. 주운 아이템은 쌓이고, 쌓인 효과는 서로 엉킨다. 처음엔 콩알탄이던 총알이 몇 층 내려가면 화면을 덮는 불꽃놀이가 된다. 무엇과 무엇이 만나 터질지는 해봐야 안다. 그게 재미다.


옆에는 충직한 동반자 '해치몬'이 붙는다. 이름 그대로 알에서 깨어나는(hatch) 녀석들이다. 난 전한의 이물지, 후한의 설문해자 등의 문헌에서 나오는 해치가 모티프인줄 알았다. 만물 K문화에 심각하게 빠져있다. 


아무튼 상자를 부수거나 방을 클리어하면 알이 떨어지고, 방을 몇 개 더 돌면 부화한다. 조합을 맞추면 더 센 '슈퍼 해치몬'도 나온다. 물론 꽝도 있다. 육아는 원래 뜻대로 안 된다. 빌드 키우랴 알 품으랴, 육아는 원래 바쁘다.


가장 큰 변화는 협동이다. 전작은 혼자였지만, 이번엔 최대 4명이 함께 심연에 뛰어든다. 친구들과 하면 키우는 게 하나 더 생긴다. 우정, 아니면 원한이다. 좋은 아이템을 누가 먼저 줍느냐에 달렸다. 경험상 원한이 더 커지긴 한다.


정식 버전엔 새 최종 보스 '허영의 신 테이아'가 기다린다. 허영의 신이라니. 매년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마주치는 내 자신감과 이름이 같다.


스토브탭스: 용사단 키우기 & 수박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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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남은 15분, 회의 시작 5분 전. 게임 하나 깔기엔 짧고, 멍때리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스토브가 그 틈을 노렸다. 미니게임을 묶어 '스토브탭스'로 내놨다. 설치 없이, 공짜다. 누르면 바로 시작이다. 다운로드 바를 쳐다보며 이미 늙었는데 늙어갈 필요 없다. 다른 게임할 때 로딩이 길다고 애꿎은 귀한 SSD를 갈굴 필요도 없다. ‘스토브탭스’를 하면 되거든!


20가지 이상의 게임이 추가될 ‘스토브탭스’엔 현재 두 개 게임이 올라와있다. '용사단 키우기'는 제목이 곧 설명서다. 용사를 모아 부대를 꾸리고 키운다. 키우기 장르의 정석대로 숫자가 쌓이는 맛이 전부이자 핵심이다. 손이 바쁠 땐 잠시 놔둬도 된다. 자동 아이템으로 영입부터 합성까지 다 해준다. 새로운 용사가 뭐가 나올지 기대하는 맛도 쏠쏠하다.


'수박 만들기'는 한때 스트리머들의 밤을 통째로 삼킨 그 게임과 같은 방식이다. 같은 과일 둘이 부딪히면 한 단계 큰 과일이 된다. 작은 과일이 큰 과일이 되고, 끝내 수박이 된다. 말은 쉽다. 수박 하나 만들기 전에 통이 먼저 넘친다. 모 국가의 일부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수박을 사고 싶어하지만 사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 게임 때문인가 보다.


인생도 같은 것끼리 합쳐서 커지면 좋겠다. 현실에선 대출 두 개를 합치면 더 큰 대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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