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나 시리즈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지금은 당연한 듯 여겨지는 이런 방식은 사실 콘텐츠 업계에서 오래 전부터 형성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콘텐츠 업계가 위기의 문제해결 방법론으로 주목한 IP 비즈니스는 여전히 실험적이다.
스마일게이트 뉴스룸은 1편(올해 이 드라마 안 보면 손해다)에 이어 2편에서 IP 비즈니스의 잠재성을 가늠해 보고, 그 확장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2023년 OTT 기대작들은 대체로 인기 웹툰과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웹툰, 웹소설은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점에서, 이는 흥행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존 한 영역에서 인기 있던 작품을 다른 미디어로 이식하는 방식을 미디어 믹스라고 부른다. ‘소설의 영화화’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2020년대의 미디어 믹스는 기존의 ‘소설의 영화화’ 같은 사례와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가진다. 처음부터 미디어 믹스를 목표로 기획되면서 웹툰, 웹소설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확장성의 성격을 가지기도 한다. 이유가 뭘까? 일단 10년 전쯤으로 시간을 되돌려볼 필요가 있다.
문제들: 스트리밍과 플랫폼
2015년 이후, 콘텐츠 업계는 엄청난 도전을 받는다. 특히 콘텐츠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코드 커팅(Cord Cutting)’ 현상이 두드러졌다. 코드 커팅이란 유료 케이블 방송에 가입하는 대신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방송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PC, 스마트폰, 태블릿 등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다. 특히 코드 커팅을 주도한 것은 넷플릭스였다.
코드 커팅의 전조는 201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넷플릭스는 2010년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1년에는 스포티파이*(참고)가 미국 서비스를 론칭했다. 두 회사 모두 스트리밍의 대표 기업으로서, 코드 커팅 현상은 모바일 환경의 발전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이라는 두 개의 전제 조건 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2015년부터 전세계 모바일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성장이 가속화됐다.
특히 이전에는 인구 수는 많지만 통신 인프라가 부족하고 문화적 차이나 경제적 빈곤으로 시장성이 적다고 판단되던 인도, 인도네시아, 멕시코, 브라질 같은 지역이 신흥 시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처럼 수많은 섬으로 연결되거나, 멕시코처럼 사막과 황무지가 많은 국가가 비용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통신망의 문제를 무선 인터넷이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위주 콘텐츠 플랫폼은 매우 빠르게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팬데믹이 전 지구를 덮치자, 사람들은 고립된 환경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대량 소비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들의 위상이 굳건해지면서 2015년부터 6~7년간 콘텐츠 업계는 기존 산업 구조가 와해되는 경험을 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스트리밍 플랫폼의 유행이 콘텐츠 기업의 양극화 현상을 가속화시켰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시리즈)의 제작비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스트리밍 플랫폼의 수익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스트리밍 플랫폼 비즈니스의 한계다. 월 구독료가 극장 티켓 가격보다 낮은 대신 대규모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지만, 결국 플랫폼의 수많은 콘텐츠 중 사용자의 선택을 받는 일부 작품에 수익이 몰리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심지어 넷플릭스의 계약 조건은 한 작품의 제작비 대비 10~20%를 추가한 비용으로 모든 권리(2차 저작권과 사업권)를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제작사들은 자사 콘텐츠가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서 1위를 하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려도 저작권을 활용한 부가 수익을 전혀 가져갈 수 없는 구조적 모순에 빠졌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있는 콘텐츠들은 넷플릭스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성장을 견인했던 마블 시리즈가 디즈니 플러스로 옮겨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자체적인 플랫폼을 만들 수 없는 제작사는 콘텐츠 제작비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대안을 강구해야 했다.
한편 팬데믹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분야에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팬데믹이 거의 모든 산업을 위기에 빠뜨린 상황에서 가상 공간과 가상 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테크와 통신 분야에 금융 자본이 집중됐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는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금융 자본의 투자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그런데 팬데믹 시기에도 드라마, 게임, 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디지털 환경에서 유통되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경제 불황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새삼 확인되었다. 오히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다른 산업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2023년 현재 중동 펀드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 자본이 콘텐츠 산업계로 몰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 규모가 커지는 것에 비해 콘텐츠의 사업 모델과 수익 구조는 혁신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투자금도 늘어나는데 정작 새로운 수익 모델의 비전은 불투명한 상황. 영화나 음악,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수익 모델을 개선하고 확장할 필요성을 체감했다.
고민들: 나빠진 수익성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 비즈니스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콘텐츠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약화된 수익성의 대안을 어디선가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콘텐츠 하나가 성공하면 수익이 보장됐고, 인기를 얻어 대중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패트리어트 게임] [붉은 10월] [레인보우 식스] [잭 라이언] 같은 톰 클랜시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블록버스터 영화와 PC 게임, OTT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트와일라잇 사가]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듄] 같은 작품들 모두 원작 소설이 영상화된 작품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플랫폼 기업들에게 유리한 구조는 콘텐츠 창작자들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더 이상 하나의 콘텐츠로는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를 기획할 때부터 ‘연결’을 대안으로 모색하게 됐다.
IP 비즈니스는 제품이 아니라 권리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인기와 영향력에서 얻은 가치를 ‘권리’로 보고 이 권리를 상품화하는 비즈니스란 얘기다. 물론 추상적인 인기를 구체적인 사업으로 전환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콘텐츠의 확장성을 위해 구조를 짜고, 거기서 파생되는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이런 전략에서는 커뮤니티와 커머스가 매우 중요해진다.
커뮤니티는 팬덤이고, 커머스는 굿즈라고 간단히 비유해보자. 마블이 대표적이다. 마블의 인기는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캐릭터는 굿즈로 확장되고, 스토리는 다른 영역으로 외연을 넓힌다. 이 과정에서 제품화가 가능해지고, 수익의 극대화도 이룰 수 있다. 디즈니처럼 마블을 인수하고 자체 플랫폼을 만들지 못하는 제작사라면? 원작을 확보하거나 원작의 권리를 가진 사업자와 협업하는 게 자연스럽다.
단지 영화 산업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산업’이 커지고 있다고 보면, 이야기 산업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기반으로 수익 모델을 다각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영상 콘텐츠가 웹툰/웹소설과 연결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자나 시각 콘텐츠가 영상화되며 성공한 사례는 지난 역사를 살펴봐도 숱하게 많다. 특히 1980~90년대의 베스트셀러가 2000년 이후에 영상화된 경우도 많다. 주간 만화, 그래픽 노블,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 연결되는 마블의 성공 방식을 웹툰/웹소설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방법론: 구조적 연결 가능성과 잠재성
게다가 이제는 콘텐츠 비즈니스의 영역 구분도 사라지고 있다.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의 르세라핌은 네이버 시리즈와 협업해 [크림슨 하트]라는 독자적인 세계관의 웹툰을 연재한다. 이 작품의 세계관 구축에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는 김초엽 작가가 참여했다.
김초엽 작가는 배우 매니지먼트와 영상 제작사인 블로썸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블로썸 크리에이티브 소속이다. 이 회사에는 김영하, 김중혁, 박상영, 장류진, 배명훈 등 인기 작가들이 속해 있다. 블로썸 크리에이티브는 작가 매니지먼트뿐 아니라 자체 출판사를 통한 출판과 영상 제작으로 스토리 IP를 확장해 나가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출판을 하고, 케이팝 회사가 웹툰을 만든다. 네이버와 하이브, 블로썸 크리에이티브가 [크림슨 하트]라는 IP로 연결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IP는 웹툰, 음악을 넘어 게임으로도 이어지고, 더 나아가 커머스로 진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IP 비즈니스는 단지 콘텐츠가 다른 미디어로 전이되거나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IP 비즈니스에서 주목할 점은 이종 산업의 핵심 가치가 어떻게 구조적으로 연결되는가의 문제다. 그렇게 보면 현재 영상화가 발표되거나, 준비하는 스토리 IP에서 중요한 건 인기가 아니라 잠재성이다.
그런 맥락에서 르세라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르세라핌의 사례가 흥미로운 것은 웹툰이나 웹소설 등 이미 성공한 결과물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각각의 연결성을 염두에 두고 전개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르세라핌 뿐 아니라 현재 (혹은 미래의) IP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보다는 ‘연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요한 부분이니까 한 번 더 강조하겠다. IP 비즈니스는 확장이 아니라 연결에 중점을 두는 게 중요한 전략인 영역이다.
바라트 아난드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콘텐츠의 미래]에서 ‘21세기의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은 바로 ‘연결'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야기 산업은 음악과 연결될 수 있다. 제조업이 웹툰과 연결될 수도 있다. 음악에서 캐릭터가 파생될 수도 있다. 팟캐스트가 스토리 산업과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연결을 핵심 가치로 생각하고 IP 비즈니스를 살펴보면 이전과는 다른 많은 것들이 보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 이 영역은 아직 실험단계이기 때문에 성공이든 실패든 더 많은 사례가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 차우진 문화칼럼니스트
[참고] 스포티파이
지난 2008년 선보인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약 8천 만곡의 음원을 들을 수 있다. 방대한 음원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사용자 취향에 맞는 음원 추천 알고리즘으로 유명하다. 월간 사용자가 4억 8,900만명(2022년 기준)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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