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첫 만남, 3초면 애프터 여부가 갈린다’는 말이 있다. 처음 각인한 이미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심리학은 이걸 3초 효과, 초두 효과, 콘크리트 효과 같은 유식한 이름으로 부른다. 결국 사냥감을 물색하던 태초부터 내려온 본능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3초 만에 정해졌다.
스토브에서 게임을 고르는 일도 같다. 3초면 충분하다. 썸네일 한 장, 태그 세 개, 장르 한 줄. 그걸로 장바구니에 담거나 스크롤을 내린다. 상점 페이지를 끝까지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생각대로 간다. 그런데 그 3초가 틀릴 때가 있다. 표지가 내용을 배신하는 경우다. 나쁜 뜻은 아니다. 열어보니 기대보다 더 많이 들어 있는 쪽이다. 사람도 그런 쪽이 오래 간다. 흔히 반전 매력이라고 부른다.
8월호는 표지를 배신하는 게임 네 개를 골랐다. 공포 태그를 달고 나왔는데 무서움보다는 다른 것 때문에 심박수가 오르는 게임. 광복절 교육자료처럼 생겼는데 밤새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게임. 귀여운 동물이 주유소를 지키는 힐링 타이쿤인 줄 알았더니 새벽에 총을 맞는 게임. 그리고 흔한 인디게임인 줄 알았더니 반전 개발자가 득시글거리는 게임이다.
고독방송: 심(深)
라퓨타 게임즈는 스스로를 ‘달콤하고 발랄하고 발칙한 게임을 만드는 팀’이라고 소개한다. 세 단어 어디에도 ‘무섭다’는 없다. 호러 게임을 만드는 팀인데 그렇다.

전작 ‘고독방송’은 지난해 8월에 나왔다. 하꼬 스트리머의 흉가 체험 방송을 다뤘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인터넷 방송가에서 대량으로 소비했고, 화제도 따라왔다. 그 덕을 후속작이 봤다. ‘고독방송: 심’은 텀블벅 펀딩 1299%를 달성하고 8월 14일 스토브에 올라왔다.
부제는 깊을 심(深)이다. 전작보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고독방송’이라는 제목도 중의적이다. 고독한 방송, 그리고 스토리를 관통하는 또 다른 고독을 동시에 가리킨다.
주인공은 수지. 전작 주인공 유나의 후배다. 겁이 없다는 컨셉을 밀고 있는 행동파 스트리머다. 게임 방송 중 막히면 ‘바람이나 쐬요’ 하며 야외방송으로 갈아탄다. 선배가 흉가 체험 이야기를 꺼내자 자기 용기를 증명하겠다며 끼어든다. 그리고 나올 수 없게 된다.
무대는 블록 아일랜드 워터파크다. 개장 축사를 맡을 인플루언서가 의문사한 뒤 심령현상 소문이 끊이지 않아 문을 닫았다. 철거 공사 중에는 현대식 건물 구조물 안에서 오래된 초가집도 나왔다. 공사가 그대로 멈췄다.
이 워터파크는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데 방송만은 계속 송출되는 곳이다. 시청자들은 수지의 행동 하나하나에 채팅으로 반응하고, 놀리고, 미션을 던진다.
전작보다 무섭지 않다. 개발사도 부정하지 않는다. 공포를 주는 것보다 수지를 보여주는 데 공을 더 들였다. 상용 게임 제작툴로 뽑은 2D 도트 화면, 시나리오에 따라 갈아입는 의상, 변신 히로인물을 흉내 낸 연출, 이용등급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훑는 서비스씬, 후방을 둘러보게 만드는 사운드까지. 태그는 호러인데 무게중심은 好러다.
엔딩 일부는 숨겨 놨다. 전부 보려면 최소 두 번은 돌려야 한다. 난이도가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한 ‘치킨모드’, 손본 길찾기, 엔딩 후 해금되는 갤러리, 다음 이야기를 예고하는 쿠키영상까지 챙겼다.
그날의 신문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애국심 고취나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다이빙스튜디오 정찬영 대표가 개발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검열 시스템도, 주사위 밸런스도 아니었다. “교육용 게임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꺼내는 순간 ‘유익한 게임’이라는 딱지가 먼저 붙기 때문이다.

처음엔 교육용 게임처럼 보인다. 플레이 할수록 그냥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철학도 함께 담았다.
배경은 1926년 경성이다. 해방까지 19년 남았고, 게임 속 인물 중 누구도 그날이 온다는 걸 모른다. 플레이어는 신문사 편집국장이다. 사장도 겸한다. 신문사를 먹여 살릴 책임과 지면에 무엇을 실을지 결정할 권한을 동시에 쥔다.
하루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아침에 기자를 배치하고 20면체 주사위를 굴린다. 기자마다 인맥, 언변, 지능, 체력 수치가 달라 같은 곳에 보내도 누구를 보내느냐로 결과가 갈린다.
취재가 끝나면 화면에 타자기가 뜬다. 단어 타일을 골라 문장을 만든다. 그 사이 상단의 신뢰도·파급력·검열 위험도 세 게이지가 동시에 움직인다. ‘인신매매’ 같은 단어를 넣으면 파급력이 오른다. 검열 위험도도 같이 오른다. 빼면 안전해지고, 기사는 밋밋해진다. 셋을 다 만족시키는 조합은 없다. 윤전기를 돌리는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결과는 즉시 점수로 오지 않는다. 시간차를 두고 온다. 오늘 지운 문장 때문에 며칠 뒤 누군가는 무사하고 누군가는 잡혀간다. 그 소식이 다시 신문에 실린다.
당시 발행한 매일신보 지면을 인게임 날짜에 하나씩 붙였다. 6·10 만세운동을 비롯한 실제 사건이 서사의 축이다. 서체는 조선100년체로 통일했다. 조선일보가 1920년대 활자를 복원해 무료로 배포한 폰트다.
전체 분량은 20만 자다. 분기는 곳곳에 있지만 도달하는 엔딩은 하나다. 개인의 선택으로 뒤집히지 않는 시대를 담았다. 같은 지점에 닿기까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렸는지가 사람마다 다른 게임이다.
광복절에 출시했다.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어디까지 버티고 어디에서 타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다 하고 나면 “나라면 그날 어떻게 썼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전작 기자 한 명은 그 질문에 밤을 새웠다.
최후의 주유소
전기차가 도로를 장악한 세계다. 주인공은 황야에 남은 마지막 주유소를 인수한다. 스토브 상점 페이지가 붙인 장르는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캐주얼. 커뮤니티 리뷰가 붙인 태그는 힐링, 타이쿤, 귀여운. 그리고 미스터리다. 간극이 꽤 크다.

둘 다 거짓말은 아니다. 낮의 이 게임은 정직한 경영 시뮬레이션이다. 쓰레기를 치우고 매점을 정리한다. 컴퓨터로 발주를 넣으면 트럭이 온다. 서명 대신 발자국 도장을 찍고, 창고에서 선반으로 물건을 옮긴다. 바코드를 찍고 잔돈을 거슬러 준다. 기름값은 매일 바뀐다. 저장 탱크를 키워 싼 날에 비축해야 한다.
업그레이드 반응은 즉각적이다. 포스기를 올리면 손님들이 카드를 꺼낸다. 화장실과 주차장을 열면 실제로 차를 대고 화장실을 쓴다. 타이어 공기 주입기를 놓고, 정비 구역을 만들고, 네온사인을 켠다.
문제는 밤이다. 게임은 처음부터 경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는 나가지 말라고. 전 주인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이후 그를 본 사람이 없다. 쿵쿵 소리를 참지 못하고 문을 여는 순간 총을 든 황소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다른 게임이 시작된다. 주민들과 대화하고 녹음기를 뒤지며 마을의 비밀을 추적한다. 그리고 이 게임의 가장 영리한 부분이 나온다. 그렇게 모은 소문을 마케팅에 쓴다. 외계인 소문이 돌면 외계인 콘셉트 장식을 사서 관련 수치를 올린다. 괴담으로 매출을 만든다. 이 정도 감각이면 주유소가 아니라 세상을 점령한 전기차 회사가 마케터로 스카우트해야 한다.
뼈대는 타이쿤인데 어드벤처가 충분히 섞여 질리지 않는다. 낮에는 힐링, 밤에는 스릴러. 게임 한 개 값으로 두 개를 받는다면 나쁜 거래는 아니다.
글리퍼 - 세상의 낙인
태그는 캐주얼, 퍼즐, 시뮬레이션으로 분류됐다. 화면은 픽셀 아트고 색은 알록달록하다. 하는 일은 타투샵 운영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느긋한 가게 꾸미기 게임이다.

배경은 외계 디스토피아다. 주인공은 낮에 외계인 손님의 몸에 ‘글리프’를 새겨 합법적으로 돈을 번다. 밤에는 산소와 전력을 훔친다. 살기 위해서다. 산소가 유료인 세계에서 타투샵 하나로는 버티기 어렵다. 제목의 ‘낙인’이 손님 피부에 새기는 무늬만 가리키는 게 아닌 듯하다.
아케이드 퍼즐과 타이쿤과 스텔스 액션을 한 몸에 붙였다. 낮의 손님 응대와 밤의 침입이 뒤섞인다.
3,400원짜리 게임인데 선택에 따라 결말이 갈리는 분기형 서사다. 이 가격에 이 구성이라니 반전이다.
팀글리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여섯 명이 모인 팀이다. 기획, 비주얼, UX/UI, 개발을 나눠 맡았다. 대한민국 예술계 최고 존엄인 한예종이라니.
지난해 8월 경일게임아카데미 뉴비겜톤 해커톤 최우수상을 시작으로 전국게임개발대학생연합 유니콘 독창성 부문 특별상, 제3회 UNICON 특별상, 2026 PlayX4 인디씨드 챌린지 IR 피칭 3·4등상을 받았다. 2026 PlayX4 인디게임 빌리지에도 출품했다. 이력서만 놓고 보면 학생 팀이라고 믿기 어렵다. 이 또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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