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카제나)’가 출항 전 현문을 걷어 올렸다. 배에 비유하자면 선원 점호, 조타장치와 주기관, 통신과 조석관계까지 확인한 셈이다. 이제 함장과 관제소의 승인만 있으면 된다.
카제나는 기대가 큰 작품이다. 그러나 “어떤 게임이냐”고 묻는다면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게임 마니아들은 장르명과 간략한 소개만 들어도 감이 잡히겠지만 모바일게임 중심의 분재 게임이나 일러스트 중심의 2차원게임을 주로 해왔던 이들에게는 뭔가가 뭔가스러운 낯선 용어일 뿐이다.
마치 “엣지러셔도 아닌 디펜시브 태클 애런 도날드가 오라인의 트리플팀을 뚫고서 옵션플레이까지 박살내는 색을 선보였다”, “마이요 존느를 입은 줄리안 알라필립이 펠로톤에서 브레이크어웨이 어택으로 파노 피니시 솔로 승리를 올렸다” 식의 설명처럼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카제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키워드 일러스트, 덱빌딩(Deck-Building Game), 로그라이크(Roguelike)를 풀어 설명하기 위해 지면을 할애한다.
그림 1. 저 말은 저 사람이 정말 잘한다는 뜻이다
카제나, 장르의 집합체
카제나는 ‘다크 판타지 로그라이크 RPG’다. 낯설다. 요즘 세상에 있어 보이는 말 그냥 가져다 붙이는 게 다 장르라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생경한 조합임은 틀림없다.
장르를 이해하려면 카제나가 어떤 게임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작품은 '카오스'라는 미지의 존재로 인해 멸망한 우주를 배경으로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게임이다.
흔히 말하는 아포칼립스 SF 세계관이다. 아포칼립스는 다크하다. 더해서 카제나에는 캐릭터 사망 연출도 수십가지 담겨있다. 트라우마 발생 시 정신 건강을 관리해주는 콘텐츠까지 있다. 말만 들어도 다크하다. 그래서 다크하니까 다크 판타지다. RPG는 본디 의미인 역할수행게임에서 좀 변한듯싶지만 요새 게임 중 정통 RPG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그렇다 하고 넘어가자.
그림 2. 다크하니까 다크판타지
조물주 위 빌딩주는 아는데 덱 빌딩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장르에 붙은 로그라이크는 무엇인가? 로그라이크에 대해 알고가기 전 덱빌딩부터 알고 가야 한다. 왜냐면 카제나는 덱빌딩이 전제된 로그라이크이기 때문이다.
카제나에서 플레이어는 캐릭터별 고유 카드와 공용 카드를 결합해 방대한 조합을 구성한다. 매판마다 새로운 스킬과 능력을 짜내야 한다. 때문에 국내 대형 모바일 게임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구조다. 그래서 이를 설명하고자 덱빌딩과 로그라이크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보통 덱빌딩을 설명할 때 ‘발라트로(2024)’와 ‘슬레이 더 스파이어(2017)’가 언급된다. 이를테면 “어, 슬더스 같은 게임이야”라는 식으로. 이 게임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설명이지만 게임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 이런 설명은 되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오히려 “그럼 같이 카드로 겨루는 ‘신격의 바하무트(2011)’나 ‘하스스톤(2014)’도 덱빌딩이야? 그런데 왜 CCG라고 불러?” 라는 질문이 나올 확률이 높다.
덱빌딩 게임이란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점진적으로 자신만의 ‘덱(카드 묶음)’을 구성해 나가는 방식의 카드 게임을 말한다. 핵심은 ‘시작 시 최소한의 카드를 가진 상태에서, 플레이 중 카드를 획득·조합 혹은 제거해 성장한다’다.
덱빌딩은 전통적인 트레이딩 카드 게임(TCG), 이를테면 매직 더 개더링(MTG)과 같은 카드게임과 구별된다. TCG나 CCG는 사전에 덱을 구성해 대결하는 반면, 덱빌딩은 게임 중 상황에 맞춰 덱을 발전, 최적화한다.
덱빌딩 게임은 CRPG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 보드게임이 기원이다. 2008년 도널드 X. 바카리노가 발표한 ‘도미니언’이 효시다. 플레이어는 동전, 행동, 승점 카드를 최소한으로 가진 상태에서 시작해, 턴마다 새로운 카드를 구매하여 덱을 강화한다. 가장 많은 승점 카드를 획득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이를 위해 덱이 ‘효율적으로 굴러가도록’하는 구성 전략이 필요하다.
그림 3. 도미니언 게임 테이블 (출처: 보드게임 커뮤니티)
게임 중 구입한 카드로 덱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은 보드게임 유저에게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지칭할 마땅한 장르 용어가 없어 도미니언도 TCG, CCG 등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이후 ‘썬더스톤(2009)’, ‘아센션(2010)’ 등 다양한 변형 작품이 등장했다. 이들은 도미니언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던전 탐험, 판타지 전투 등 테마를 강화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구조의 게임들이 여럿 출시되며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덱빌딩 게임은 디지털 게임으로 빠르게 넘어왔다. 특히 로그라이크와 결합하며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대표작으로 앞서 언급한 슬더스가 있다. 매번 다른 카드, 적, 이벤트를 마주하면서 플레이어는 전투와 보상을 선택해 덱을 구성한다. 높은 난이도와 무작위성이 결합해 ‘최적의 선택’을 요구하는 핵심구조는 덱빌딩을 인기 장르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몬스터 트레인1(2020)’, ‘몬스터트레인2(2025)’와 ‘어크로스 오벨리스크(2021)’ 등이 널리 인기를 끌면서 컴퓨터 게임에서도 확고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덱빌딩 게임의 주요 특징은 상기 언급한 점진적 성장 이외에도 ‘자원관리’, ‘확률적 변동성’, ‘높은 재플레이성’ 등이 있다.
확률적 변동성과 높은 재플레이성은 로그라이크와 접목해 극대화된다. 덱은 셔플하는 순간 섞여서 돌아가기 때문에, 원하는 카드를 반드시 손에 잡는다는 보장이 없다. 불확실성은 긴장감을 만든다. 카드 조합과 무작위성이 매 판을 다르게 만드므로 반복 플레이를 장려하고, 장르의 지속적인 인기를 뒷받침한다.
그림 4. 이 정도로 덱을압축했다면 로또를 사도 된다
아이브 ‘애프터 라이크’는 아는데, ‘로그라이크’는 몰라요
덱빌딩의 기본 개념을 숙지했으니 이제 로그라이크를 알아보자. 로그라이크라는 용어는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학생들이 개발한 컴퓨터 게임 ‘로그(Rogue)’에서 유래한다. 문자 그대로 로그 같다는 말이다. ASUS의 ROG는 아니다.
로그는 단순한 아스키 문자 기반 인터페이스로 구현된 던전 탐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절차적 생성 (Procedural Generation), 턴 기반 진행(Turn-based Play), 그리고 영구적 죽음(Permadeath) 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게임을 좀 한다 싶은 사람은 어디선가 주워들었을 정도로 현재는 보편적인 개념이지만 당대에는 혁신이었다. 로그는 던전을 한 칸씩 이동하며 몬스터와 조우하고, 아이템을 습득하며, 최종적으로는 생존하지 못할 경우 모든 진행이 초기화되는 방식이었다. 죽으면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규칙은 강한 압박과 동시에 학습을 요구했다. 실패를 반복하며 적응하게 만드는 구조였고 이는 당대 게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이 개념과 비슷한 개념을 차용하는 게임을 로그라이크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림 5. 로그는 지금도 즐길 수 있다. 스팀태그는 '로그라이크'
참고로 동시대 출시된 컴퓨터 게임으로는 ‘어드밴처랜드 (1978), ‘템플 오브 앱샤이(1979)’,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1982)’, ‘울티마1(1981)’, ‘위저드리(1981)’, ‘캐슬울펜슈타인(1981)’ 등이 있다. 모두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명작이지만 시스템 설계만 보았을 때 로그의 개념이 얼마나 선도적인지 알 수 있다.
로그라이크 장르의 핵심은 죽음이다. 게임 오버 시 저장된 상태로 복구할 수 없는 영구적 죽음은 플레이어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이 규칙은 단순한 제약이 아닌 학습 기제가 된다. 매 플레이마다 무작위로 재구성되는 던전과 적 배치 속에서, 플레이어는 실패를 통해 전략을 세우고 게임 세계에 적응한다. 반복을 통한 인지적·전략적 학습, 성취감, 보상을 얻는다.
이후 로그의 기본 설계에 영향을 받아 ‘넷핵(1987)’, ‘앙반드(1990)’, ‘에이돔(1994)’ 같은 게임이 등장한다. 시장은 이들을 묶어 로그라이크로 분류했다. 최근까지 ‘픽셀던전(2012)’, ‘케이브 오드 쿼드(2024)’ 등 로그라이크 게임이 출시되고 있다.
로그와 그 파생 작품들은 1990년대 중반 당시에 많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의해 플레이 됐다. 실행파일과 소스코드가 오픈소스로 열려있던 덕에 개발자들의 접근이 쉬웠던 영향이다. 그 결과 로그는 현대 게임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블리자드 노스는 ‘디아블로(1996)’를 만들 때 로그라이크 설계 방법론을 차용했다. 특히 영구적 죽음을 도입한 하드코어 모드는 로그 계통의 작품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또한 다중역할접속수행게임(MMORPG)인 ‘울티마 온라인(1997)’, ‘이브 온라인(2003)’ 역시 로그라이크의 죽음 개념을 접한 개발진에 의해 디자인돼 죽음 패널티가 강하게 설정돼 있다.
그림 6. 힐링포션하나 없이 무방비로 도살자 만나는 하드코어 캐릭터의 심정이란
참고로 로그라이크는 오픈소스의 영향인지 아마추어 개발자 혼자, 혹은 소규모 인력이으로 오래 제작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로그라이크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에이돔은 토마스 비스쿠프(Thomas Biskup) 혼자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개발했다가 2012년부터 또 다시 만들고 있으며 2002년 개발을 시작해 지금까지 개발 중인 ‘드워프포트리스(2006)’ 역시 로그라이크 개념을 계승하면서 오랜 시간 게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렇듯 개발자들나 게이머가 크게 사랑하고 있는 덕에 ‘개발자 콘퍼런스(GDC)’처럼 로그라이크 개발자들이 모이는 ‘로그라이크 디벨로퍼 콘퍼런스’도 열고는 한다. 2008년 베를린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는 로그라이크를 이렇게 해석했다.
"’로그라이크’란 하나의 장르로서, 단지 ‘로그 비슷한 것’ 만이 아니다. 이 게임들은 어떤 교범으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로그라이크의 교범이 될 게임으로는 ADOM, Angband, Crawl, Nethack, 그리고 모든 로그라이크의 원조인 Rogue를 특기할 만하다.”
즉 어느 요소가 누락되었다고 해서 특정 게임이 로그라이크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몇 가지 요소를 갖고 있다고 해서 특정 게임이 로그라이크라는 의미도 아닌 셈이다.
댓글 보면 카제나는 로그라이크가 아니라 로그라이트라는데?!~
자 그럼 여기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카제나에는 영구적인 죽음이 없는데 왜 로그라이크라고 불리는 것인가? 위에 해석을 참고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순수 로그론자’ 들에 의하면 카제나는 로그라이크가 아닌 로그라이트로 분류해야 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로그라이트(Rogue-Lite)는 로그라이크 장르 게임들의 요소를 차용했으나, 정통 로그라이크는 아닌 게임들을 일컫는 개념이다.
영구적 죽음이 아니고 소지품을 유산으로 남겨서 계속한다든가 하는 형태로 스스로 실력이 늘지 않아도 영구적인 능력 강화나 각종 보너스로 난이도가 점점 쉬워지는 게임을 뜻한다. 예를들어 이번 플레이에서 얻은 아이템을 다음 플레이에 강화용으로 사용함으로써 영구적 죽음을 우회 한다거나, 반복 플레이에서 어드밴티지를 마련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FTL(2012), 리스크오브 레인(2012), 데드셀(2018), 하데스(2020) 등이 있으며 엘든링(2022) 등 소울라이크 게임도 광의의 개념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들은 죽으면 다시 도전하는 형태로 플레이 중 얻은 재화를 활용해 각종 요소를 강화하도록 설계됐다.
그림 7. 죽음을 반복하면서 성장한 캐릭터 덕에 손과 눈의 협응이 부족해도 모든 도전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
사실 로그라이트라는 장르 설정에는 논란이 많다. 용어 자체가 순수 로그 주의자가 로그의 특성을 희석한 후기 로그라이크 게임에 대한 반발로 만든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카제나를 두고 “이게 무슨 로그라이크야! 나의 로그라이크는 이렇지 않다귱!”이라며 시비를 걸어온다면 가볍게 무시해도 되겠다.
최근 게임 장르는 무 자르듯 명확히 재단하기 어렵다. 흔히 말하는 뱀서라이크 장르들도 슈팅 게임류 로그라이트 게임인데 분화돼 불리고 있으며 일본 ‘춘소프트’에서 제작한 ‘이상한 던전 시리즈’는 개발사 스스로가 밝혔듯 로그를 레퍼런스로 한 게임이나 로그 정통주의자 시선에서는 물음표를 띄울 시스템이 있어 다른 장르로 편입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 '이상한 던전류' 라는 파생 장르로 분류하기도 한다.
다크판타지 로그라이크 RPG ‘카제나’ 10월 22일 출시
결론이다. 길고도 길었던 덱빌딩과 로그라이크, 로그라이트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이제 카제나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충실히 개념을 학습한 독자라면 이제 카제나의 장르만 보고도 무슨 게임인지 쉽사리 상상할 수 있으며 카제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이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모범 답안은 다음과 같다.
‘카제나는 10월 22일 출시하는, 다크 판타지 세계관을 즐기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게임인데 로그라이크 특성을 차용해 확률적 카드 덱 빌딩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장점을 융합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플레이 방식을 선보이는 스마일게이트의 신작’이라고.
외우기 힘들다고? 그렇다면10월 22일, 재미있는 카제나. 딱 두개만 기억하면 된다.
단, 콘텐츠를 기사에서 인용 시 ‘스마일게이트 뉴스룸’으로 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