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기고문] 자전거 탄 스페인 풍경 2020-02-21


자전거는 몸과 완전히 밀착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이동 수단이다. 페달을 밟으며 온전히 몸의 기운으로만 움직이니, 원한다면 두 바퀴로 가지 못할 곳이 없다. 자전거를 타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나라. 스페인으로 향한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기획팀의 장호진 부책임의 자전거 탄 풍경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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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로 세계여행, 스페인부터

 

자전거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는 것은 오래된 꿈이었다. 자전거 여행에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년 전, 반쯤은 충동적인 마음으로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국내 자전거 여행은 몇 번 경험이 있었지만 해외로 떠난 적은 없었다. 함께 떠날 아내와 일정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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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위해 스페인으로 떠났다>


결국 시간과 비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스페인 남부 해안을 따라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가장 가 보고 싶은 나라가 스페인이었고, 특히 남부 해안 지역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형이 내륙에 비해 완만할 테니 좀 더 수월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물론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지만.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면 차나 비행기로 이동하면 볼 수 없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여행자로서는 잘 알 수 없는 곳들을 경험할 수 있고, 그곳의 일상까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이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지역을 지났지만, 유명한 도시나 유적지들보다 작은 마을에서의 소소한 일상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특별한 하루를 소개하고 싶다.

 

| ! 하고 찾아온 새로운 만남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배경지로 유명한 그라나다에서 이틀간 체류 후 서쪽을 향해 떠나는 날이었다. 그라나다는 내륙에 위치한 고지대라서, 이날의 코스는 대부분 내리막일 거라 예상했다. 아내에게 내색은 안 했지만 오전에 4시간 동안 최소 60km 정도 가고, 오후에 몇 시간 더 타면 100km 정도는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심찬 계획을 구상 중이었다. 그전까지 하루 이동 거리는 보통 60km 정도였으니, 거의 두 배를 이동하는 셈이었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뒷바퀴에 펑크가 나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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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나 버린 타이어>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살펴보니, 튜브가 아니라 타이어가 찢어져 있었다. 튜브는 여분을 챙겨 왔으나 타이어는 여분이 없어 튜브를 갈아 봤자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길에 유리 조각이 떨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문인 듯했다. 일단 임시로 펑크 패치를 붙이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차도가 나오면서 완만한 다운힐이 시작됐다. 왼편으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있고 오른 편으로 작은 시골 마을인 ‘두카이’라는 곳이 나타났는데, 자전거 펑크를 때우느라 지체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가까워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두카이는 그야말로 ‘깡촌’이었다. 점심을 먹을 식당도 하나 없었다. 겨우 마트를 찾아 샌드위치라도 만들어 먹으려 했는데 재료도 팔지 않았다. 결국 아쉬운 대로 시리얼에 우유를 사와 마트 앞에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유에 말아 먹으니 목마른 김에 술술 넘어간다. 동네 사람인 듯 지나가던 사람이 “본 아페티!” 하고 인사를 한다. 유럽 사람들은 불어가 약간 고급스러운 언어라 생각하는 것 같다. 


| 우연한 곳에서의 소소한 일상들 

 

한동안 흙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작은 마을이 나오고 마침 바(bar) 하나가 열려 있었다. 목도 마르고 지쳐 있던 터라 일단 쉬면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노년의 가게 주인에게 “도스 세르베짜 뽀르빠보르! (맥주 두 잔 주세요!)”라고 했더니 눈으로 동그랗게 물음표를 그린다. 그래서 손가락 두 개를 들며 “투!”라고 했더니 “아하! 도!” 한다. 옆에서 맥주 마시던 동네 청년들이 웃어서 민망했다. 이 동네 사투리인지 도스가 아니라 그냥 도라고 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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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을 하며 만난 풍경들>


아무튼 맥주를 받아서 마시는데 주인이 오더니 “하몽?” 하고 뭔가 먹을 거냐고 물어본다. 무료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출출하기도 해서 달라고 했다. 스페인에선 ‘프리 타파스’라고 해서 안주 겸 뭔가를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가게에 따라 맥주와 세트 가격이기도 하고 따로 돈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 봤자 속된 말로 “눈탱이” 맞을 정도로 가격이 비싼 건 아니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사실 그런가 보다 하고 싶지 않아도 스페인어를 모르니 그냥 엄지를 척 들며 여유 있는 척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하하! 


어쨌든 가져다준 음식은 토마토와 하몽에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린 것이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하몽도 다른 데서 먹던 것보다 촉촉하고 고소한 게 맛이 아주 좋았고, 토마토를 함께 먹으니 하몽 특유의 비릿한 향까지 느껴지지 않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귀국한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가끔 하몽을 구하면 토마토, 올리브유, 소금을 뿌려 먹곤 한다.


맥주 한잔 마시며 근처의 숙소를 찾아보니 경로에서 조금 떨어진 멜레기스에 한곳이 있었다. 바로 출발하여 숙소를 찾아갔는데, 계속해서 내리막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리막이 길면 길수록 불안감도 커진다. 내려간 만큼 또 올라가야 할 테니 말이다. 겨우 찾아낸 숙소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본 기억으로는 이 근처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유럽 최남단의 빙하 지형이라는데, 겨울이 되면 이곳으로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도 눈이 올까 싶었지만, 누군가 오니 이런 곳도 있는 거겠지 생각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근처 마트도 문을 닫아 저녁은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좀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와인부터 한 병 시켰다. 정말 스페인에 있는 동안 와인은 원 없이 마셨다. 와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에서 2~3만 원 정도의 와인을 2~3유로(2,500~4,000원)면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10유로 정도 하는 와인도 마셔 보긴 했는데 싸구려 입맛인지 오히려 더 맛이 없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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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하몽과 토끼 구이>


식사로는 감바스와 토끼 구이를 시켰는데, 토끼는 난생처음 먹어 보는지라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스페인 마트에 가면 토끼고기도 많이 파는데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서 먹어보지 못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고기에서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맛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진짜로 아무 맛이 없다. 지방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생 단백질이 이런 맛일까 싶은 느낌이다. 예전에 어느 생존 다큐멘터리에서 지방이 없는 토끼를 2주 정도 먹으면 지방을 섭취하지 못해 죽을 수도 있고, 이를 토끼고기 쇼크라 한다던 기억이 났다. 정말 그럴까 싶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무미인 고기를 여행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일념 하에 소금과 가니시 맛으로 열심히 먹었다. 

와인으로 모자라서 맥주를 한잔 더 마시고 있는데, 이날 유로컵 축구 중계가 있어 동네 아저씨들이 가게에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그걸 뒤에서 보고 있자니 적막하고 지루한 시골의 저녁은 우리나라나 이곳이나 크게 다른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 오지 않았을 곳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 오래 기억될 추억을 안고

 

이후 말라가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의 경험이 즐겁고 강렬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화려한 대성당과 유적지, 관광지도 물론 기억이 나지만 나를 더욱 그립게 만드는 것은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다. 숫기 없고 소심한 성격 탓에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 일은 없는데도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보면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스페인어로 한참을 얘기하던 아저씨, 길을 물었더니 주소를 보고 따라오라며 같이 헤매 주던 동네 사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동양인이 신기한 듯 힐끔대던 시골 할아버지들, 주유소에서 만난 프랑스인 오토바이 여행자 부부, 물이 남았다며 우리에게 시원한 물을 따라 주던 독일인 노부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순박하고 친절하던 유럽인들이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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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또 언제 이런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지만, 힘들고 즐거웠던 이때의 기억은 아마 평생의 얘깃거리가 되어 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했던 말로 여행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도스 세르베짜 뽀르빠보르!



글·사진: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기획팀 장호진 부책임

* 위 내용은 스마일게이트 그룹 사보인 <Smile Tong>에 담긴 내용을 편집했습니다. 

 


EDITOR's COMMENT 


#스마일게이트 그룹의 사보, <Smile Tong> 

스마일게이트 그룹은 2018년부터 계간지로 사보 <Smile Tong>을 발간하고 있다. 종이 사보를 통해 아날로그식 소통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을 선물하고, 스마일게이트 임직원의 가족에게 스마일게이트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창간되었다. 스마일게이트의 여러 사업과 사내 문화, 임직원 및 이벤트 등 다양한 스마일게이트 내부 및 게임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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