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이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요? 우리는 왜 코딩을 배워야 하는 거죠?"
"모두가 개발자가 되기 위해 코딩을 배우자는 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이 기본이 되는 시대가 다가온 만큼, 그 틀을 누구나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영국 공영방송 BBC가 만든 마이크로비트 교육재단(Micro:bit Educational Foundation)의 가레스 스톡데일(Gareth Stockdale) 대표는 코딩 교육의 중요성과 목적을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았다.
마이크로비트 재단은 2016년 BBC가 마이크로소프트, ARM, 삼성전자 등 29개 파트너사와 함께 설립한 디지털 교육 공익 재단이다스톡데일 대표는 BBC 콘텐츠를 학습에 활용하는 'BBC 러닝' 운영책임자를 7년간 지낸 교육전문가. 2018년부터 마이크로비트 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일보는 한국과학창의재단과 업무협약 차 방한한 스톡데일 대표를 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스마일게이트 캠퍼스에서 만나 바람직한 코딩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영국은 코딩을 발빠르게 공교육에 도입한 국가 중 하나다. 한국보다 4년 빠른 2014년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만 5세부터 간단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는 프로그래밍 알고리즘의 정의와 실행 방식을, 중학교에서는 2개 이상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힌다.
하지만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전면적인 코딩 교육 도입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스톡데일 대표는 "2011, 2012년부터 선택과목 방식으로 코딩 교육이 시작됐는데 당시 BBC가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5% 이상이 컴퓨터공학 비전공자였다"며 "가르치는 선생님도, 학생도 익숙치 않은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BBC가 개발한 것이 마이크로비트였다. 마이크로비트는 가로 5㎝, 세로 4㎝ 크기의 초소형 컴퓨팅 보드다. 25개의 발광다이오드(LED)와 2개의 버튼, 나침반, 모션 인식 및 자이로센서, 온도계, 스피커, 블루투스 모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용자가 손쉽게 소스 코드를 작성해 화재경보기부터 로봇까지, 원하는 목적의 디지털 기기를 만들 수 있다. 과거 과학자를 꿈꾸던 초등학생의 필수품 '과학상자'의 컴퓨터판인 셈이다.
스톡데일 대표는 "보통 코딩이라고 하면 스크린에 비치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라며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을 현실 세계로 가져와 아이들도 쉽게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비트는 이후 100만 개가 제작돼 영국 전역에 배포됐으며, 현재까지 600만 개 이상이 생산돼 65개 국가 2,500만 명의 학생이 활용하고 있다. 가격은 19달러, 한화로 2만 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비영리 목적으로 제작된 만큼 저소득층과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도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선진국과 개도국의 기술 격차가 커지게 마련인데, 마이크로비트는 개도국 학생에게도 소프트웨어를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셈이다.
재단은 2019년부터는 매년 아이들이 코딩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코딩 대회 '두 유어 비트(Do your :bit)'를 개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게임사 스마일게이트 퓨처랩 주관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예선인 '마이크로비트 글로벌 챌린지(MGC)'가 개최된다. 퓨처랩은 스마일게이트가 만든 사회공헌재단 희망스튜디오가 운영하는 조직으로,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창의환경과 문화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올해 대회에는 전국 초·중·고등학생 1만 925명이 참가했는데, 고양이집에 무게 감지가 가능한 마이크로비트를 설치해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중성화와 입양을 통해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냥집' 프로젝트(서울 충암중 김나경·노은지)가 첫 본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스톡데일 대표는 "코로나부터 기후변화 등 범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부터 여성 안전 등 지역적 특징이 드러나는 프로젝트까지 매년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며 "아이들이 디지털 기술로 우리 삶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톡데일 대표의 생각은 교육이란 '창의적 학습의 대가' 미첼 레스닉 미국 매사추세츠 공돼(MIT) 미디어랩 교수의 비전과도 일치한다. 레스닉 교수는 창의적 교육을 위해선 △낮은 문턱 △높은 천장 △넓은 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초보자도 쉽게 시작할 수 있으며(낮은 문턱),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복잡한 프로젝트도 수행할 수 있고(높은 천장), 관심사와 열정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넓은 벽)는 취지다.
스톡데일 대표는 "단순히 기능적 차원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배운다면 정작 이를 활용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창조해내는 역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교육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fun)인 만큼, '코딩으로 일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 기사 출처 : 한국일보 2022년 11월 13일자 "19달러짜리 손바닥 반 만한 칩에... BBC는 거대한 '코딩 철학'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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