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만크] 한국 대표 크리에이터를 만나다 - '승리호' 영화감독 조성희 2021-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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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영화, 드라마화는 영화 엔터테인먼트계에 아주 중요한 변화를 만들 것”“창작은 좀비의 손가락으로 하는 일이에요.” 조성희 감독은 해사하게 웃으면서 무시무시한 창작의 ‘1원칙’을 이야기한다. “많은 분이 창작은 마치 악마와 거래를 한 천재가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 휩싸여 하룻밤 만에 훌륭한 무언가를 완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상은 ‘고시 공부’에 가깝다고 할까요. 창작은 습관이 되어야 해요. 죽도록 안 써져도, 그냥 앉아서 마치 좀비처럼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계속 쓰는 거죠. 안 믿고 싶으시겠지만요.”(웃음)


천재의 겸양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늦깎이로 입학해 재학 시절 만든 첫 단편 영화 <남매의 집>(2008)부터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유형의 천재가 나타났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심사위원 만장일치가 아니면 대상을 주지 않는 미쟝센단편영화제는 7년 만에 기꺼이 ‘대상’을 호명했고, 전 세계 신인 감독들에게 ‘꿈의 데뷔 무대’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 씨네 파운데이션 부문에서 3등 상을 안겼다. 그 뒤로 영화감독 조성희의 신작은 늘 ‘뉴스’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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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영화 <짐승의 끝>(2010)은 벤쿠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그의 첫 상업 장편영화 <늑대소년>(2012)은 700만 명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흥행작이 됐다. 추리 스릴러의 새로운 미학을 보여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그리고 2021년 한국 최초의 SF 블록버스터 <승리호>는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공개되어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이토록 반짝이는 창작의 열매를 만든 게 ‘좀비의 손가락’이라니? 


Q. 영화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 새롭게 만드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죠. 그 원천이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좀비의 손가락’이라니 흥미로운데요?

A. 물론 어떤 이야기의 시작은 굉장히 사소하고 충동적이죠.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좋은 작품을 보고 나서, 심지어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보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하지만 아이디어는 아이디어일 뿐이죠. 특히 영화는 많은 사람, 많은 돈이 투입되고 제작 기간도 길거든요. 아이디어가 시나리오가 되고, 시나리오가 끝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긴 숙성 기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이거 정말 재미있겠다!’라는 즐거운 충동에서 시작하지만, 그 이후엔 길고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버티기’의 시간이 시작돼요. 빛이 있다면 그림자가 있듯, 창작에서는 황홀한 충동과 꼭 견뎌내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함께 있죠. 그래서 늘 최초의 충동을 떠올리려고 노력해요. 이 이야기가 왜 내게 재미있었더라? 그리고 그 재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크리에이티브를 이끌어내면서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는 거죠. 


Q. 천재의 겸양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최근 <승리호>를 함께 촬영한 김태리 배우가 조성희 감독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조성희 감독은 “수줍은 고집쟁이 천재”다. 일단 ‘천재’다.(웃음)

A. 일단, ‘수줍다’는 건 맞아요.(웃음) 저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거든요. 밖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은 굉장히 우울해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수업이 끝나면 우울감이 밀려오면서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영화를 만들려면 정말 많은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좀 고통스러웠어요. 하지만 많은 스태프가 모여서, 함께 소통하고 배우면서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그러면 모든 고통을 뒤엎을 만한 희열이 생기기 때문에, 그 희열로 또 다음 촬영을 하는 거죠. 창작자에게는 ‘깊은 소통’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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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성희 감독님이 창작자로서 ‘깊은 소통’을 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A. 제가 대화 요령이 서툰 사람이라서, 제 머릿속의 이야기와 비주얼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사실 지금도 잘 못 하지만요. 예전에는 일단 빌었어요. “이렇게 한 번만 해 주세요.” 그냥 막무가내로 졸랐던 기억이 많아요. 그런데 <승리호>처럼 규모가 큰 작품을 할 때는 그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꾼 방법이 ‘더 많이 듣는 것’입니다. 


Q. 경청하는 것도 중요한 만큼, 창작자의 높은 ‘비전’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일도 어렵고 중요한 일일 것 같습니다. ‘고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A. 아마 많은 창작자가 같은 고민을 하실 것 같은데. 특히 공동 작업을 하는 분야에서 창작자들이 겪는 딜레마 중 하나예요. 과연 ‘누가 옳은가?’. 창의적인 일은 수학처럼 ‘답’이 없잖아요. 그래서 누구도 ‘이 선택이 과연 최선인가?’를 확답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어떤 장면을 촬영했는데, 제가 생각한 앵글이 아니에요. 그런데 ‘나의 앵글이 더 훌륭한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반드시 “내가 생각했던 건 다른 앵글이다”라고 말해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영화를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다 꺼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중에 살아남는 것도 있고 폐기되는 것도 있겠지만, 다 꺼내고 다 공유한다. 감독으로서 현장에 있는 이유이자 자격,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문득 조성희 감독님의 MBTI 유형이 궁금합니다. 

A. INFP 라고 하던데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굉장히 소심하고 내성적인데 은근히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데.(웃음) 그 관심이 좋아서 저도 영화를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Q. 창작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는다면요? 

A. 이어지는 답일 텐데, 가장 행복할 때는 칭찬받을 때! 영화는 사람들에게 ‘봐달라’고 만드는 예술이니까,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시든, 분노하시든, 어떤 반응이라도 보여주면 저는 정말 감사해요. 인터넷 댓글을 잘 보는 편은 아닌데, 한번은 댓글 창에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어요. 그 댓글 배틀을 보는데 정말 흐뭇하더라고요. 내가 만든 장난감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때 영화감독으로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Q. 그럼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일까요.

A. 장애물에 맞닥뜨릴 때죠. 영화를 만들 때 발생하는 수천 가지의 어려움이 있고, 매일 문제가 발생해요. 작품을 완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두렵고 고통스럽죠. 


Q. 조성희 감독님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A.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혹은 비행기 조종사. 둘 중 하나가 되자!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을 경기도 포천의 외딴 동네에 살았는데, 정말 외딴 동네라서 친구들과 놀 수도 없고. 집에서 TV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하루 종일 그림만 따라 그렸어요. 저렇게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유치원 가기 전이니까 네다섯 살이었는데, 그때부터 만화가를 꿈꿨어요. 


Q. 움직이는 그림, 결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꿈을 이루셨네요. 영화학도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꿈을 이룬 창작자로서 젊은 창작자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씀이 있다면요. 

A. 제가 20대일 때는 실컷 놀았어요. 저는 오락실에서 철권을 하면서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도 많거든요.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직업, 생활, 수입을 고민해요. 어떻게 데뷔해야 하나, 작전을 세우죠. 제 20대 시절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똑똑하고, 재능도 많은 젊은 세대가 너무 현실적인 고민을 먼저 합니다. 터무니없는 상상에 빠져보기도 하면 좋을 텐데요. 한편으로 기성세대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만든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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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늑대 소년>부터 <승리호>까지, 조성희 감독님의 작품은 장르와 이야기가 매번 달라지지만, 한 가지 질문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남겨줄 것인가. 그 질문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A. 맞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갈등이 더 첨예해지고 있고, 증오를 학습시키는 것 같아요. 당신의 ‘적’은 누구인가를 규정하려고 합니다. 안타깝죠. 결국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건 어른들이잖아요. 차기작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서울을 배경으로 큰 재난이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고등학생 2학년 소녀가 어려움을 돌파하는 내용이에요. 


Q. 오락실 이야기를 하셨는데, 게임이 창작자에게 좋은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경우도 많죠?

A. 그럼요. 요즘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게임을 좋아한다는 건, 단순히 ‘액션’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세계관에 빠져드는 거죠. 인물과 인물의 관계, 사건을 직접 내가 플레이해서 완성하는 즐거움이 정말 커요.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는 일할 시간도 부족해서 게임을 거의 못 했어요. 아쉽죠. 


Q. 스마일게이트의 대표작 크로스파이어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중입니다. 게임을 영화로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게임의 영화, 드라마화는 영화 엔터테인먼트계에 아주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낼 거예요. 저는 앞으로 100년 후에 ‘영화’가 어떤 형태로 변형되어 있을까 상상하곤 합니다. 기술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잖아요. 최근 게임의 비주얼을 보면 영화보다 더 화려한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죠. 더불어 게임은 유저가 스토리에 관여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요. 이런 강점이 영화와 결합됐을 때, 큰 변화를 일으킬 것 같아요. 다만,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저 ‘영화로 파생’되는 방식이 아니라 게임의 세계관과 포스를 유지하면서 영화의 ‘가치’를 지닌 스토리텔링을 발전시키면 더 훌륭한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Q. 최근 게임 회사들의 IP 다각화 행보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는 창작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겠네요?

A. 정말 근사한 게임 스토리가 많아요. 현재 영화와 드라마가 웹툰에서 정말 큰 수혜를 입고 있듯, 게임에서도 무궁무진한 스토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웹툰이 전 세계 IP 업계에서 각광을 받는 것처럼, 한국 게임도 글로벌 유저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기대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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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꼭 예술가가 아니라도, 현실에서 창의적인 생각, 창작자로서의 태도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현실을 더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A.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그 자체가 창의적인 일이고,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창작자라고 할 수 있어요. ‘번쩍’하는 영감의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꾸준히 관찰하고, 생각하고, 쓰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습니다. “우리 뇌가 안 움직이면 일단 손가락부터 움직이자.” 제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예요. 길은 찾은 자에게 보이거든요. 길 위를 걷는 발걸음을 멈추지 말자. 그러다 보면 또 좋은 생각도 더 자주 떠오르게 될 거에요. 창작과 창의를 너무 신성시할 필요도 없고,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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