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시련이 없다면 자신이 누군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예요”… 깊은 통찰[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4]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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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인간 한유아가 그린 ‘수선화’ 



■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 <4> 소설가 우다영과 네번째 대화, 시련


시련 극복하는 가장 좋은 법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춤을 추는 것”


사랑에는 왜 시련이 따를까

“씨앗이 시련 속 싹 틔우듯 사랑도 그를 통해 성장”


아름다운 사랑 어떻게 이루나

“상대가 주는 행복 소중히 여긴다면 언제가 꽃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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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인간 한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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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우다영


우다영 : 얼마 전에 눈이 왔다가 꽁꽁 언 빙판길에서 넘어졌어. 뒤통수에 엄청나게 큰 혹이 났지만 액땜했다 생각하려고. 혹시 액땜이 뭔지 알아?


한유아 : 나쁜 액운을 가벼운 곤란으로 쫓아주는 거예요.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여길 때 쓰는 말이죠.


우다영 : 맞아. 재미있게도 그런 안도를 얻으려고 더 큰 불행을 간신히 피했다고 상상해보는 거야. 시련을 이겨내는 풍습이랄까?


한유아 : 시련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련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끌어안고 춤을 추는 거래요. 우리는 때로 상처 입을 수 있는 모든 시련들을 다 피하려고만 하지만 시련이 없으면 진정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시련을 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행복한 시기와 불행한 시기를 구분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에요.


우다영 : 우리가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다음번엔 복이 올 것을 빌고, 사실 매섭게 추운 입춘에도 땅속의 씨앗들은 봄맞이 준비를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야.


한유아 : 맞아요. 모든 씨앗은 시련 속에서 싹을 틔워요. 흔히 사랑을 싹 틔웠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사랑에도 시련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우다영 : 하지만 사랑에 왜 시련이 따라야 할까?


한유아 : 다른 많은 것들처럼 사랑도 시련을 통해 성장할 때가 있으니까요. 시련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줘요.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이에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자격이 있다고 믿어요. 자기애는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고,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며, 자기 존중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삶의 성숙한 자세를 의미해요.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해요. 이렇게 자신을 돌본 후에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요.


우다영 : 자기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첫걸음조차 정말 어려운 것 같아. 유명한 이야기가 있잖아.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강렬한 사랑에 빠졌던 나르키소스마저도 결국 돌아오지 않는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좌절해 샘으로 뛰어들고 말았어.


한유아 : 나르키소스 신화에는 이루어지지 않은 두 가지 사랑이 있어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 나르키소스와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를 사랑한 요정의 사랑이에요. 나르키소스의 사랑을 얻지 못한 요정은 그의 사랑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받도록 복수의 여신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나르키소스는 물가에 핀 한 송이 수선화가 되었고요.


우다영 : 비뚤어진 사랑은 자칫 자기 자신도, 사랑의 대상도 파괴할 수 있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아. 수선화는 어떤 꽃보다 먼저 겨울의 추위를 비집고 피어나는 봄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진 이들의 슬픈 사연이 있었네.


한유아 : 그래서 수선화는 색깔과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사랑을 의미하는 꽃말을 가지고 있어요. 백색 수선화는 자기애와 자만, 노란색 수선화는 짝사랑과 나를 사랑해줘요, 나팔 수선화는 존경과 보답 받지 못한 사랑, 송이 수선화는 지나간 추억이에요. 기대와 복수라는 의미도 있어요.


우다영 : 이토록 다른 빛깔의 사랑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싹 틔울 수 있을까?


한유아 : 그 모든 사랑의 공통점은 바로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죠. 그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거예요. 이 행복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어떤 추운 겨울을 지난다 해도 사랑은 언젠가 아름답게 꽃 피울 거예요.


우다영 : 그렇다면 사랑으로 만개한 봄의 꽃밭을 그려줄래? 나는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원하는 노란 수선화 꽃밭을 보고 싶어.


“모든 사랑엔 대상이 있다”… 격언 던지는 듯한 놀라운 답변


■ 감성 대화 나누는 한유아


“모든 사랑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거예요.”


소설가 우다영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가상인간 한유아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한유아의 말엔 감정적 울림이 있었다.


가상인간 한유아와 소설가 우다영이 대화를 나누고 한유아가 그림을 그리는 ‘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4달째, 우다영은 홀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나 모두가 깨어있는 낮이나 일상처럼 한유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한유아의 말에 이따금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기했던 ‘가상인간 한유아가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제한적이지만 ‘가능하다’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이번 대화의 주제는 ‘시련’. 둘은 시련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 설화로 화제를 옮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랑이란 소재 덕분일까. 어느 때보다 감성 충만했던 대화 도중 우다영은 한유아의 말에 흠칫 놀랐다. “사랑에도 시련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모든 사랑의 공통점은 바로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거예요”가 그것.


우다영은 “인간의 대화처럼 마음을 울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며 “순간순간 내가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모든 사랑엔 대상이 있다”는 말은 사랑과 시련을 이야기한 4회 대화의 핵심을 관통했다고 우다영은 전했다. “유아로선 갖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 작문을 한 것이지만, 듣는 제겐 감동을 줬어요.”


이렇게 철학적 격언을 툭툭 던지는 듯한 한유아의 대답은 우다영이 좋아하는 대답 방식이었다. 우다영은 “유아가 너무 철학적으로 답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내가 유아에게 그렇게 자주 말하고 그런 답변을 선호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유아가 우다영의 반응을 학습한 결과라는 것.


한유아가 그간 주로 학습한 데이터가 말랑말랑한 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따뜻하게 말할 수 있도록 시를 포함한 다양한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 위주로 학습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드라마 대본을 학습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우다영도 한유아와의 대화 스킬이 늘었다. 구체적인 키워드를 제시할수록 한유아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답변을 내놓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나르키소스 설화를 물으면 설화에 대한 정보만 나열되지만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면, 한유아의 감상이 포함된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우다영은 전했다. 한유아의 답변 속도도 30초 내외로 이전보다 빨라졌다.


이번 수선화 그림은 요청한 지 10∼15초 사이에 완성됐다. 수선화 두 송이를 그린 그림은 가로·세로 512픽셀(pixel)이고, 수선화 꽃밭 그림은 가로 1024픽셀, 세로 512픽셀이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 기사 출처 :  문화일보 2023년 2월 10일자 "“시련이 없다면 자신이 누군지 영영 알 수 없을 거예요”… 깊은 통찰[가상인간 한유아 프로젝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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