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MMORPG ‘로스트아크’가 보여준 게임 음악의 미래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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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MMORPG ‘로스트아크’가 보여준 게임 음악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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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예술이다.” 이제는 그저 상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2023년 3월부터 공식적으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에 따라 게임이 ‘문화예술’로 법적인 인정을 받게 된 거죠. 탄탄한 서사와 개성있는 캐릭터, 점점 더 발전하는 비주얼, 그리고 감정을 고조시키고 스토리 안으로 푹 빠져들게 만드는 음악까지, 게임은 당당히 ‘종합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중 ‘음악’은 게임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자음부터 웅장한 오케스트라 하모니까지, 게임 음악이 들려오는 순간 우리는 게임의 세계로 입장했다는 걸 확인합니다. 그리고 게임 음악과 함께 더욱 더 게임의 세계에 몰입하기 시작합니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게임과 음악의 하모니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스마일게이트 뉴스룸의 IP 디스커버리에서 음악 전문 칼럼니스트 임희윤 작가가 ‘핀볼’부터 ‘로스트아크’까지, 주옥같은 명작 게임의 OST 연대기와 역사적 의미 그리고 게임 음악의 미학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줍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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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핀볼’의 여왕, 수전 치아니의 탄생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신드롬 덕분에 잘 알려진 문구지만, 사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우리나라 게임(숨바꼭질) 음악의 ‘시조새’ 중 하나다. 오래 전부터 게임, 즉 놀이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를 이어왔다. 일할 때도 노동요를 부르는데, 하물며 맘 놓고 놀 때 노래와 음악을 곁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게임과 음악이 함께한 역사를 살펴보는 글을 시작하면서, 과거 쪽으로 타임머신의 다이얼을 얼만큼 돌려야할까. 게임 음악의 역사가 저리도 유구하니 말이다. 자, 기억의 촉수가 아슬아슬 하게 닿을 만큼만 다이얼을 돌려보자. 스르르르륵….


도착한 곳은 1980년. 12월 성탄절 시즌에 맞춰 미국의 게임기 제작업체 밸리(Bally)가 새로운 핀볼 게임기 1만1,000대를 미합중국 전역의 아케이드에 포진시켰다. ‘제넌(Xenon)’이라는 이름의 이 핀볼은 아케이드 게임 역사에 두 가지 중요한 획을 그었다. 플레이 양상에 따라 사람의 목소리가 재생돼 반응하는 게임, 그리고 사운드 디자인을 여성이 담당한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 여성이 신시사이저와 전자음악계의 개척자, 수전 치아니(Suzanne Ciani·1946~)다. 그는 1979년, 밸리사(社)의 의뢰를 받은 뒤 핀볼 게임을 면밀히 분석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보코더, 하모나이저, 각종 필터를 활용해 변형시켰다. 로봇 같으면서도 관능적인 이 매혹적 청각 캐릭터는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안드로이드 같았다.

일찍이 웰슬리대(大)에서 클래식 음악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뮤직 테크놀로지를 공부한 치아니는 신시사이저 제작사인 벌처(Bulcha)에서 직원으로 일한 바 있다. 음악과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훗날 ‘다이오드의 디바’라는 별명을 얻게 됐고, 유명 신시사이저 개발사 모그(moog)에서 수여하는 ‘음악 혁신상’의 여성 최초 수상자가 된다.


 

출처: Tokyo Matt 유튜브


나는 2017년 3월, 운이 너무 좋았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시내의 작은 교회 예배당에서 치아니의 특별 솔로 콘서트를 본 것이다. 오색 케이블로 복잡하게 연결한 여러 대의 모듈러 신시사이저에 둘러싸인 치아니는 때론 기괴하고 때론 신비로운 음향의 밀림을 교회 가득 뿜어냈다. 그 연주는 고혹적이며 비현실적이었다. 지금도 치아니의 음악을 재생할 때면 그날 느낀 기분 좋은 현기증이 재발한다.


실은 핀볼 게임보다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게임 음악 역사의 명장면이 있다. 다이얼을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겠다. 1985년. 그해 개발돼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게임, 테트리스 이야기다. 테트리스는 원색의 벽돌만큼이나 청각적으로도 선명하게 기억되는 작품이다. 바로 19세기 러시아 민요인 ‘코로베이니키’와 ‘트로이카’, ‘칼린카’의 음울한 선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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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게임 음악의 전성시대가 열리다

 

그러고 보면 1980년대는 아케이드 게임의 백가쟁명기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가 핀볼의 여왕 치아니를 길러냈다면, 멀리 북아일랜드는 어둠 속 명장 마틴 골웨이를 배출했다. 골웨이는 ‘쿵푸’, ‘핑퐁’, ‘람보’, ‘아카노이드(벽돌 깨기)’의 음악을 도맡은 ‘칩튠(chiptune)계의 모차르트’다. 8비트 사운드만으로 중독적인 선율과 음향을 뽑아낸 골웨이의 재능은 지금 돌아봐도 신묘하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에서도 명장이 나왔다. 아케이드 게임 ‘트윈 코브라’의 우에무라 다쓰야다. ‘트윈 코브라’는 종스크롤(縱-scroll) 슈팅게임의 수준을 격상시키고 그 형태를 완성한 전설적인 작품. 이 게임을 개발하고 음악감독까지 맡았던 우에무라는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오락실 게임에 전념해서인지 이후의 세대에게는 존재가 거의 잊힌, ‘무관의 제왕’이자 ‘그늘의 천재’ 중 하나다. ‘트윈 코브라’는 공교롭게도 사카모토 류이치 씨(1952~2023)가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와 같은 해 세상에 등장했다. 기타리스트 출신인 우에무라는 록(rock)의 느낌을 칩튠과 접목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강렬한 선율과 리듬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냈다.


출처: Bitwave Games 유튜브 


영화 <마지막 황제>와 게임 ‘트윈 코브라’가 같은 해 나왔다는 사실은, 영화 음악과 게임 음악의 발전 양상이 거의 역방향에 가깝게 판이하게 전개됐음을 상기시킨다. 영화 음악은 화려하고 웅장한 아날로그에서 단출한 디지털을 향해 나아갔다. 에리히 코른골트(1897~1957)의 1930, 40년대 작품들부터 존 윌리엄스(1932~)까지 고고하게 이어지던 대규모 관현악 기반의 영화음악 전통은 1980년대 한스 치머의 등장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밴드 ‘버글스’ 출신인 치머는 록과 전자음악의 요소를 파격적으로 도입했고, 밴드 ‘오잉고 보잉고’ 출신의 대니 엘프먼이 이런 흐름에 화답하면서 할리우드의 청각적 풍경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급기야 때로 음악보다 음향, 선형적 선율보다 입체적 사운드 건축에 힘을 쏟은 고(故) 요한 요한손(영화 <시카리오> <컨택트>), 루드비그 예란손(영화 <테넷> <오펜하이머>)의 시대까지 흐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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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음악, 오케스트라로 영토를 넓히다


게임 음악은 이와 거의 반대 방향으로 발전했다. 조악한 8비트 전자 사운드에서 시작해 오늘날 ‘로스트아크’를 비롯한 대작 게임들의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영토를 넓혀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이에 브라질의 드럼 앤드 베이스(drum and bass) 명장 아몽 토빈이 ‘스플린터 셀’을, ‘21그램’ ‘바벨’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영화음악가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를 맡은 것은 IDM(Intelligent Dance Music), 게임 음악, 영화 음악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는 대통합의 화양연화를 상징하는 장면들도 만들어냈다.

마이클 저키노(영화 <업> <코코>, 게임 ‘콜 오브 듀티’)나 라민 자와디(영화 <퍼시픽 림>, 드라마 <왕좌의 게임>, 게임 ‘메달 오브 아너’)처럼 커리어 초기부터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것이 다재다능한 음악감독들의 공식처럼 되기도 했다.


최근 유수의 클래식 콘서트홀과 오케스트라가 잇따라 게임 음악을 정규 레퍼토리로 들이기 시작한 건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한때 ‘뿅뿅 사운드’로 폄훼되던 게임 사운드트랙의 유쾌한 혁명, 도발적 역전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코른골트의 오페라나 교향곡을 연주하던 관현악단이 이제는 똑같은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로스트아크’ 같은 MMORPG 게임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영화 <천년학>으로 유명한 재일 음악가 양방언 씨와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시규어 로스, 배틀스, 브링 미 더 호라이즌, 래드윔프스에 대해 말하다 보면 그와 금세 아이슬란드, 미국, 영국, 일본을 청각적으로 여행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클래식부터 아시아 각국의 전통음악, 록과 전자음악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품은 그에게도 한 가지 크나큰 ‘장벽’이 있었다. 게임 음악이었다. ‘아이온’의 음악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그는 고사했다.


 “선입견이 있었으니까요. 올림픽,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행사 음악,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을 하던 제가 게임 음악을 한다는 게 솔직히 좀 망설여졌었지요.”


개발사는 ‘아이온’의 데모 버전을 그에게 플레이해줬고, 그 완성도와 스케일에 놀란 양방언은 무릎을 치며 음악감독직을 수락했다. 그 이후 지금껏 한중일의 다양한 대작 게임에 기꺼이 자신의 음악적 자산과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R&B 팝부터 월드뮤직까지 종횡하는 천재 싱어송라이터 하림은 게임 음악에 일찌감치 문호를 활짝 연 케이스다. MMORPG의 세계관이 확장되고 정교한 고증이 중요해지면서 부주키, 니켈하르파, 마두금, 시탈, 발랄라이카 같은 세계 전역의 독특한 악기 연주를 두루 다루는 하림이 게임 음악 세션 섭외 1순위가 된 것은 흥미롭다. 해전이 등장하는 맵을 위한 녹음에 앞서 그는 “레퍼런스 지역이 지중해인지, 북극해인지” 따위를 먼저 개발사에 묻는다고 했다. 지중해면 부주키를, 북해 쪽이면 바이킹 악기인 니켈하르파를 들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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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게임 음악의 하이라이트, ‘로스트아크’


종합예술 콘텐츠로서 청각적 무한 확장까지 거듭하고 있는 게임의 대변혁 가운데, ‘로스트아크’도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로스트아크’ OST 콘서트 ‘디어 프렌즈’는 그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였다. ‘로스트아크’의 다양한 음악을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을 수 있는 공연이었다. 현장에서 약 1200명의 관객이, 생중계를 통해 무려 21만 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KBS 교향악단, 구리시립합창단, 천안시립합창단, 마포구립 소년소녀 합창단이 출연해 헤비메탈, 국악,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방대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출처: 로스트아크 유튜브 


더욱이 올해 4월, 이 공연은 사후 보완을 통해 사운드트랙 앨범으로까지 제작돼 발매됐다. 음원 리마스터링은 영국 런던의 저 유서 깊은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비틀스의 전설적 음반 제목이자 수많은 음악가의 녹음이 이뤄진 역사적인 녹음소다.


‘로스트아크’도 일찌감치 세계적 명장을 섭외해 국내 작곡가와 합작하며 음악을 글로벌 수준으로 올렸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익스펜더블’ 시리즈,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등 마블 시리즈까지 담당했던 미국 작곡가 브라이언 타일러에게 일부 음악을 의뢰한 것이다. 그는 ‘콜 오브 듀티’ ‘어쌔신 크리드’ 등 세계 메이저 게임 음악도 맡은 적이 있다. 


‘로스트아크’의 음악은 게임의 세계관만큼이나 방대하다. 월드뮤직,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를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가 펼쳐져 사운드트랙만 떼어놓고 감상해도 청각적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소향이 부른 발라드 ‘Sweet Dreams, My Dear’는 대작 뮤지컬의 핵심 넘버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감성적 파고를 자아내는 곡이다. 감미로움부터 웅장함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로스트아크’의 OST는 게임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제 타임머신에서 내릴 시간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야말로 어쩌면 더 아찔한 진짜 여행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20세기 비틀스가 이끈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아닌, 최고의 음악가들이 주도하는 ‘게임음악 인베이전’. 이 혁명의 소리들이 2023년, 인류 콘텐츠 발전사의 한 페이지에 새로운 문구를 새겨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임희윤 음악 칼럼니스트

헤럴드경제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했다. 현재 ‘희미넴’이라는 별칭으로 라디오 방송과 강연, 매거진 등 다양한 채널에서 전문 음악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예술기>, <망작들 3: 당신이 음반을 낼 수 없는 이유>,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총괄 기획 및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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