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체들이 주목해야 할 단 하나의 단어, ‘IP’

 

온 나라가 열 살짜리 펭귄 한 마리에 들썩입니다. 유튜브 146만 구독자를 거느린 펭수가 주인공이죠. 저도 그 146만 명 중 하나입니다. 에세이는 출간 전부터 3주 연속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약판매로만 1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소문도 돌죠. 물론, 저도 그 10만 명 중 하나입니다. 펭수는 그간 불문율로 여겨졌던 TV 채널 간 장벽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분명 EBS 연습생인데, 온갖 방송사에서 서로 “잠깐이라도 출연해달라” 요청한다는데요. 펭수만 나오면 모니터 앞에 착석하는 시청자들 때문이죠. 저 역시 그들 중 하나입니다. 


팬심을 간증하려 쓴 글은 아닙니다(정색). 펭수로 이야기를 시작한 건, 요즘 가장 잘나가는 IP(지식재산권)라서 인데요. EBS가 청소년이 되면서 교육방송을 떠나는 어린이 시청자를 붙잡으려 만든 캐릭터에 어른들이 열광하고 있습니다. EBS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을 줄 알더군요. 이 열 살 연습생을 여기저기에 활용 중입니다. 유튜브 채널은 물론, 각종 TV 프로그램과 광고를 넘어 출판까지 진출했으니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해 영역을 확장한 IP인 셈이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오디션 보러 간 펭수' 영상. 펭수가 영화 ‘천문’의 홍보를 위해 오디션을 보러 간 에피소드입니다. 허진호 감독이 펭수에게 “라면 먹고 갈래?” 대사를 시전해 영화 ‘봄날은 간다’를 기억하는 ‘동년배(?)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출처=자이언트펭TV>


펭수 뿐만 아니죠. 캐릭터 IP 전성시대입니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상어가족 캐릭터의 핑크퐁 브랜드나,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해 세계 문화 역사를 소개하는 어린이 책을 만든 출판사 북이십일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캐릭터 IP 하나로 기업을 일으킨 케이스도 있습니다. 올해 상장을 준비하던 ‘캐리소프트’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네, 맞아요. 장난감 친구들이랑 놀아주던 그 ‘캐리 언니’가 지금은 영상, 애니메이션, 영화, 교육 등 사방팔방으로 진출했어요. 지금까지 쌓인 캐리 IP의 구독자 수가 2억7000만명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으므로, 캐리 캐릭터를 활용한 키즈카페와 공연 등의 오프라인 사업 확장도 진행 중입니다. 이 캐리소프트의 미래 비전이 ‘아시아의 디즈니’인데요. 캐리 스튜디오, 캐리 미디어 네트워크, 캐리 공원이나 캐리 리조트 같은 걸 꿈꾸는 것이겠죠? 너무 원대해 보이지만, 비빌 IP가 있으니까 계획도 세워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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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디즈니플러스 홈페이지 화면 캡처. 디즈니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디즈니는 잘나가는 콘텐츠 기업들이 손꼽는 종착지이기도 합니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이사회 의장이나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 대표도 회사의 미래를 ‘디즈니’에 뒀습니다. 저는 디즈니를 보면 “IP의 백화점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요. 이런 디즈니도 처음에는 ‘생쥐 한 마리(미키마우스)’에서 시작했습니다. 이후 ‘라이언킹’이나 ‘미녀와야수’ 같은 고전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발판삼아 성장해 픽사와 마블스튜디오, 루커스필름까지 먹어 치우며 세계 최강의 문화제국이 됐습니다. 세계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마블의 히어로들도 모두 디즈니 식구입니다. 국내 영화산업계도 마블을 피해 작품을 거는 것이 현실인데, 그 영향력을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유력 IP로 배를 불린 디즈니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의 출격이죠.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구독 스트리밍 서비스인데요, 지난 11월 출시되고 하루 만에 가입자 1000만 명 달성이라는 놀라운 뉴스가 나왔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넷플릭스를 키운 건 ‘오리지널 시리즈’ 전략입니다. 채널에 구독자를 락인시키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독점 콘텐츠’인데, 세상에서 가장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가진 기업이 어디이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북미에서 단 두 개의 OTT 서비스가 살아남는다면 그건 개개인의 취향에 맞춤한 넷플릭스와, 대중적인 콘텐츠를 대량 공급할 디즈니플러스, 두 곳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는 이유입니다.


IP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연쇄효과 때문입니다. 디즈니는 IP의 다각화 외에도 IP를 모아서 플랫폼을 확장하는 방식을 썼죠. 아무리 하나의 콘텐츠가 떴다 하더라도, 한 분야에 그치면 수익이나 파급은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플랫폼으로 확장하든, 아니면 다른 콘텐츠 분야로 IP를 이식시키든 더 큰 무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디즈니처럼 플랫폼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원 소스 멀티 유즈 전략입니다(이 원 소스 멀티 유즈가 크게 성공하면 플랫폼화를 넘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IP를 여러 분야에 활용하는 것이죠. 또, 어느 IP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IP를 개발하는 노력도 같이 갑니다.


국내에서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 웹소설·웹툰 분야로 보입니다. 최근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핫’한 IP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올해를 “IP 확장의 원년”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합니다. ‘웹소설->웹툰->영상화, 혹은 게임화’로 이어지는 생태계가 정착되고 있고, 성공 사례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은 혹시, ‘김비서가 왜 그럴까’라는 드라마를 보신 적 있나요? 이 드라마는 지난해 8월 방영 기간 동안 최고시청률 8.7%를 찍었습니다. 이게 어떤 기록이냐면, 올해 11월 기준 ‘동백꽃 필 무렵’을 제외한 주요 방송사의 수목드라마 시청률은 최저 1% 대에서 최고 3%대입니다. 이 정도면, 김비서의 인기가 꽤 높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사실 업계에서는 예상했던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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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vN 홈페이지 화면 캡처. 웹소설, 웹툰, 드라마 모두가 흥행한 인기 IP,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 드라마의 원작은 동명의 웹소설입니다. 카카오페이지에서 ‘기다리면 무료’로 서비스됐죠. 현시점, 이 웹소설의 누적 독자수는 202만 명입니다. 소설이 인기를 얻자, 만화로도 만들어졌는데요 웹툰의 구독자 수는 더 많습니다. 무려 606만 명. 드라마를 본 구독자 수는 105만 명이고요. 소설 김비서가 인기를 얻어서 만화 김비서가 만들어졌고, 만화 김비서를 보던 독자들이 미래가 궁금해져 돈을 내고 다시 소설 김비서로 유입되다보니 “아, 이거 되겠구나” 싶은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가 IP를 사서 영상화한 케이스입니다.


김비서의 성공 이후에 웹소설이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화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KBS 2TV에서 방영된 수목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도 웹툰으로 먼저 인기를 끌었죠. 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애초에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그렸다고 합니다. 네이버웹툰과 계약 과정에서도 “영상화를 위한 IP 판매”를 연재의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하는데요. 작가들도 작품의 판권 판매가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다보니, 영상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황입니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아예 ‘노블코믹스’라는 장르를 만들었습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을 노블코믹스라고 명명했는데요. 사실 예전에도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만화나 드라마가 있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는데 최근에 분위기가 바뀌었죠. 카카오페이지 측은 이러한 변화가 어떤 IP가 성공할지 먼저 가늠한 데서 온 것으로 파악합니다. 즉, 이전에는 만화에 적합한 소설만 찾았다면, 지금 같은 경우는 소설에서 팬덤을 구축한 인기 작품을 만화화해 사전에 인기를 담보한다는 전략이지요. 아까 김비서의 사례와 일치하지요?


국내 콘텐츠의 국외 진출도 활발해지는 중입니다. 네이버웹툰이 그렇습니다. 난공불락일 줄 알았던 북미 시장에서 월간 방문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네요. 네이버웹툰의 IP가 성장하면, 미국 시장에서 주요한 사업적 성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작게는 IP를 활용한 영화화부터, 큰 규모의 투자를 받는 M&A까지 그림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요? IP가 중요해지면서, 국내 주요 웹툰 플랫폼들은 IP를 주력으로 키울 별도의 독립 법인을 운영 중이기도 합니다. 핵심 IP를 만들어 성장시켜 결국은 제2의 디즈니, 제2의 마블이 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이지요. 


게임에서도 IP는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IP를 잘 활용한 게임사로는 엔씨소프트가 있습니다. 국내모바일게임의 유료 매출 1, 2위를 모두 리니지 시리즈가 휩쓸고 있는데요, 엔씨소프트는 앞으로도 자사가 보유한 IP들을 활용한 게임을 만드는데 주력할 예정입니다. 아시겠지만, 리니지 역시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의 세계관을 가져와서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게임사인 넷마블도 K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탄소년단(BTS)이라는 훌륭한 IP를 가져왔습니다. BTS의 팬덤을 겨냥한 게임 ‘BTS WORLD’가 그 결과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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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만화 ‘리니지’ 표지 캡처, 게임 리니지2M의 홍보 이미지. 만화 리니지는 1990년대를 휩쓴 인기 판타지 순정만화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10대는 원작만화보다 아마 게임 리니지를 먼저 기억하지 않을까요?> 


게임에서 IP를 잘 활용한 사례는 멀리 찾아볼 것도 없습니다. 스마일게이트가 만든 ‘크로스파이어’도 IP 다각화의 한 예입니다. 올 6월, 크로스파이어의 콘솔버전 신작인 ‘크로스파이어 X’의 개발소식이 알려졌죠. 크로스파이어가 글로벌로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이니만큼, 콘솔버전의 발표는 올 E3 게임쇼의 엑스박스 신작소개 세션에서 필 스펜서 마이크로소프트 게임부분 부사장이 직접 맡기도 했습니다. 크로스파이어X는 엑스박스를 통해 출시될 예정인데요, 스마일게이트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북미와 유럽에 주력해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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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스마일게이트.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크로스파이어의 첫 콘솔버전 신작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크로스파이어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준비 중입니다. 앞서 2015년 할리우드 제작사 오리지널 필름과 영화화 계약을 한 이후, 최고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척 호건이 시나리오 집필에 나섰습니다. 또, 중국에서의 크로스파이어 인기에 힘입어 텐센트, 유허그와 함께 웹드라마를 제작합니다. 주연은 대륙의 유승호라 불리는 ‘우레이’와 엑소의 전 멤버인 루한이 맡았습니다. e스포츠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젊은이가 게임에서 같은 꿈을 가진 친구를 만나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된다는 스토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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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스마일게이트. CFS 2019 그랜드 파이널에서 관객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실제 크로스파이어를 기반으로 하는 e스포츠 대회인 CFS는 벌써 7년째 대회가 진행되고 있고, 멀리 브라질과 이집트에서도 한국 e스포츠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크로스파이어와 테일즈런너, CFS IP를 활용한 MD 상품들이 판매되며 팬들에게 보다 다양한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잘 만든 게임 IP가 어떻게 영역을 넓혀가는지를 볼 수 있는 사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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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스마일게이트숍. 스마일게이트와 관련된 다양한 MD상품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선데이토즈에서 개발한 ‘위베어베어스 더퍼즐’도 IP 다각화의 사례입니다. 위베어베어스는 카툰네트워크에서 방영한 미국의 애니메이션인데요, 곰 삼형제의 일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귀엽고 엉뚱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선데이토즈는 쓰리매치 퍼즐 게임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개발사인데요, 캐릭터 IP의 스토리라인과 귀여움을 자연스럽게 플레이 안에 녹여서 보다 젊은 층의 게임 유입을 유도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디즈니 IP를 활용한 ‘디즈니 팝’에도 적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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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베어베어스 더퍼즐 페이스북 페이지. 역시, 귀여운 게 최고입니다> 


이 정도면, 콘텐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감을 줍니다. “잘 키운 IP가 열 게임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다양한 콘텐츠 분야로의 확장 등을 통해 ‘IP 가치 키우기’는 앞으로 게임 업계를 비롯한 콘텐츠 업계에서 더욱 중요시될 전망입니다.

 

EDITOR's COMMENT  


#남혜현 바이라인네크워크 기자

가능하면 즐겁게, 아주 재미있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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